‘해저 2만리’나 ‘80일간의 세계일주’ 같은 책 제목을 들으면 어린 시절 독서체험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쥘 베른(1828∼1905)이 지은 소설들은 이것들 외에도 80여편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양이다. 국내 독자들에게 그가 아동용 모험소설을 지은 이로 잘못 받아들여진 측면이 크다.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김석희(62)가 방대한 쥘 베른의 저작들 중에서 13작품 20권을 ‘쥘 베른 걸작선’이란 이름으로 번역하기 시작한 지 13년 만에 마지막 결실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주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열림원·전3권)을 내고 기자들과 만난 그는 27년 번역가 인생 처음으로 저자에게 헌사로 바쳤다는 이번 책 말미의 해설 한 대목을 직접 읽어나갔다.
‘쥘 베른은 과학의 시대가 시작될까 말까 한 1828년에 태어나 20세기가 막 시작된 190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 그는 19세기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기술자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20세기에 이룩된 놀라운 과학기술의 진보에 실질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영감을 받은 몽상가, 앞으로 인류에게 일어날 일을 오래전에 미리 ‘보고’ 글로 쓴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김석희는 “지상과 지하, 바다 밑과 하늘까지 쥘 베른의 상상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면서 “지금은 대부분 소설에서 그린 상상력이 현실이 됐기 때문에 시시할지 모르지만 당시에 예상한 달나라 탐험 관련 이야기들은 이후 전개된 현실과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이를테면 ‘달나라 탐험’과 ‘지구에서 달까지’ 연작에서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뒤 군수업자들이 필요 없어진 대포를 활용하기 위해 대형 대포에 로켓을 실어 달로 쏘아 올린다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 포탄을 쏘아 올린 장소가 케네디 우주센터 부근으로 당대의 지구 과학이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지구와 달의 거리, 자전 속도, 풍향들을 따져 그곳이 최적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것이다. 또 하나, ‘포탄로켓’이 지구를 돌다가 떨어진 장소로 설정한 곳도 최초의 유인우주선 아폴로 8호가 착지한 지점과 4㎞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하니, 쥘 베른의 소설이 얼마나 치밀한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씌어졌는지 짐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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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에 삽입된 에두아르 리우의 삽화와 쥘 베른(원 안). |
김석희는 “당대의 과학적 성취를 바탕에 깐 치밀한 상상력이 큰 미덕이지만 무엇보다도 쥘 베른의 소설은 재미있다”면서 “이 사람의 작품만큼 신나서 번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과연 쥘 베른의 소설은 손에 잡으면 놓기 힘든 가독성을 발휘한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가 빚진 유산이 쥘 베른의 작품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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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 걸작선’ 번역의 마지막 고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소설가 김석희. 제주로 귀향해 살고 있는 그는 “산책하다 보면 문학청년 시절처럼 소설이 자꾸 떠오른다”며 “밀쳐 두었던 단편들을 선별해 내년 초 소설집을 출간하겠다”고 밝혔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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