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당 가격이 240만원이 넘는 ‘황제주’ 아모레퍼시픽의 서경배 회장이 최근 액면분할과 관련해 선을 그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사업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올 들어 주가가 140% 넘게 급상승하며 단박에 유가증권시장 주당 가격 1위에 올랐습니다. 시장은 아모레퍼시픽의 배당과 액면분할 여부에 주목했지만 김새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최근 주식 시장에서 액면분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현 정부의 ‘배당 강화’ 정책과 연결돼 있습니다. 액면분할은 주식 한 주당 액면가를 낮춰 발행 주식 총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총액은 같지만 양이 늘고 주당 가격만 낮아지는 셈입니다. 가격이 낮아지는 만큼 개인들의 투자참여폭이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액면분할을 통해 투자 문턱이 낮아지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올라간 배당과 주가만큼 가계소득과 그에 연동하는 지출이 함께 늘어날 수 있습니다. 주식시장 활성화는 물론 내수부양에도 기여한다는 의미입니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가 고가주 기업들의 액면분할을 독려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애플은 2000년 이후 세 번의 액면분할을 했습니다.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춘 이후 거래량이 늘어 주가가 다시 오르는 선순환의 반복으로 애플의 시가총액은 378억달러(2000년), 5547억달러(2005년), 6090억달러(2014년) 등으로 급상승했습니다. 구글, 버크셔해서웨이, 존슨앤드존슨, 셰브론 등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액면분할에 인색합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액면분할을 한 회사는 2012년 11곳이었지만 지난해 5곳, 올 상반기에는 달랑 3곳에 그쳤습니다. 이는 “높은 주가는 곧 해당기업의 가치”라는 기업 오너들의 인식 때문입니다. 소액주주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함께 깔려 있습니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업은 가치가 오르고, 가계는 배당을 받고, 주식시장은 활성화되는 ‘묘책’인데 기업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한숨을 쉽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시가총액 100대 기업 배당금의 37.8%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85.6%가 배당 상위 1%에게 돌아가는 극심한 ‘빈익빈 부익부’ 구조가 계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진수 경제부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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