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600여년 쯤 지금의 이라크 어디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빌론 왕국에 네브카드네자르2세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메디아 왕국의 공주 아미티스와 결혼했는데, 아내를 무척 사랑했는지 산림지대에서 사막으로 시집 와 향수병에 걸린 그녀를 위해 정원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정원은 땅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계단식 발코니 같은 구조물에 흙을 덮은 이른바 ‘공중정원(hanging garden)’으로, 그 위에서 사람들이 걸어 다녀도 될 만큼 튼튼해서 보통 지면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정원의 식물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유프라테스 강에서 수도관을 통해 물을 끌어왔다고 하니 아마도 당시의 첨단 기술은 모두 동원되지 않았을까. 사랑의 힘으로 사막 한가운데 그것도 땅이 아니라 하늘에 걸쳐진 정원을 만들다니, 비록 실제 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아쉽기는 하지만, 그 낭만적인 이야기는 상상만으로도 황홀하다.
전설로만 전해지는 바빌론의 공중정원과는 별개로, 우리는 또 다른 공중정원을 알고 있다. 뉴욕 도시 한복판에 낡아서 용도 폐기한 고가철도를 이용해 오랜 논의 끝에 높이 9m, 길이 2.5㎞의 공중정원으로 재탄생시킨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가 그것이다. 무척 화제가 되었던 까닭에 한 번 가보지도 못했음에도, 마치 우리 동네 공원처럼 친숙하게 느껴지고 한강 고수부지보다도 가까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원래 하이라인은 기차가 도심을 통과하며 공장이나 창고와 직접 연결될 수 있도록 건설된 고가철도였다. 1934년에 개통되어 잘 사용되다가 다른 운송수단의 발달로 점점 그 효용가치가 사라져 결국 1980년 이후에는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철거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9년 하이라인 근처 주민인 조슈아 데이비드와 로버트 해먼드에 의해 ‘하이라인의 친구들(Friends of the High Line)’이라는 단체가 설립되면서, 철도를 보존하여 주변의 건축물과 도시의 전망을 살리는 공원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펼쳐진다.
![]() |
하이라인의 원조격인 파리 ‘프롬나드 플란테’ 공원. ‘가로수 산책길’을 의미하는, 파리 12구역의 옛 뱅센 철도 위에 지어진 4.7㎞ 길이의 공원. |
하이라인 사업은 2004년 설계공모가 실시되어 52개 팀 중 조경회사인 제임스 코너 오브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of Field Operations)와 건축가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iller Scofidio+Renfro), 조경가 핏 아우돌프(Piet Oudolf)의 공동작업이 당선되었다. 공사는 2006년부터 3단계에 걸쳐 시행되었다. 2009년 갠즈부르트가에서 20번가까지 이어지는 첫 번째 구간이 완성되었고, 20번가∼30번가 구간은 2011년 , 34번가에 이르는 마지막 구간은 2014년 9월 완성되었다.
하늘에 떠 있는 정원을 걸으며 도시의 바쁜 일상을 관통하는 경험이란, 일반적인 공원에서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롭고 색다른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이라인이 보여준 성공적인 도시 재생과 수많은 관광객까지 불러 모으는 경제적 효과에 매혹된 여러 도시들이 제2, 제3의 하이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시카고, 디트로이트 등 미국에서만도 10여 개 이상의 도시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멕시코 시티 등 여러 나라에서 사용이 끝난 철도나 고가도로를 대상으로 비슷한 프로젝트들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 서울의 하늘을 횡단하던 고가도로들
예전에 길을 다니다 보던 표어 중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만큼 흔했던 ‘도시는 선이다’라는 것이 있었다. 마치 도시에 대한 진지하고 엄숙한 선언처럼 보였던 그 문장은 멋지고 장엄했지만, 대체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알기는 힘들었다. 서울은 선 중에서도 유독 직선으로 구획하고 썰어내고 잘라 올리면서 도시를 가다듬어왔다. 길을 곧게 내고 자동차를 불러들이고 속도를 높이다보니, 자동차에 비해 물리적으로나 역학적으로 저열한 존재(가령 자전거, 유모차, 휠체어, 사람…) 등은 알아서 자동차의 속도에 방해가 되지 않는 길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다.
그때 나온 것이 육교였고 지하도였다. 뭐가 그리 급한지 사람들을 모두 돌아가게 해놓고도 횡단보도 신호는 아주 뜸하며, 보행신호는 들어오자마자 5초도 되기 전에 깜빡거리며 빨리 건너라고 재촉을 한다. 자동차들은 정지하자마자 부릉부릉 출발을 앞둔 경주용 자동차처럼 씨근거린다.
이를테면 서울이라는 도시를 지배하는 기본 정신의 가장 꼭대기에는 ‘속도’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자동차의 속도를 의미한다. 아니 자동차를 위해 모두 비키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연 서울에서 차들의 속도가 인간이 양보한 만큼 빠른가 하면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자동차들은 길에 나서면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된 경주마처럼 날뛰고, 사람들은 조용히 길을 걷다가도 뒤에서 비키라며 갑작스럽게 울려대는 경적 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마 자동차가 2만5000대밖에 되지 않던 1960년대의 서울을 디자인한 ‘불도저’(김현옥), ‘황야의 총잡이’(구자춘) 시장들이 생각한 도시는 그런 모습이었고, 그들이 생각했던 ‘선’이란 주변을 살피지 않고 목표를 위해 광속으로 달리는 그런 선이었던 모양이다.
서울의 고가도로는 대부분 김현옥 시장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구상은 1964년 개최한 올림픽을 위한 도쿄의 고가도로 건설의 영향을 받았는데, 지근거리에서 조언해준 이가 당시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의 부사장직을 수행 중이었던 건축가 김수근이라고 한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걸쳐 서울에는 많은 공중의 도로가 건설되었다. 어릴 때 우리는 육교를 ‘구름다리’라고 부르며, 새로 생긴 구름다리를 구경하러 아이들과 몰려가곤 했다. 새로운 시점으로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은 아주 신기하고 재미있는 구경이었다.
고가도로들은 평평하던 도시가 점차 입체적으로 개발되는 신호탄 역할을 했는데, 최초의 고가도로는 1968년 9월 19일에 개통되었던 총 길이 940m의 아현고가도로였다. 그해는 내가 을지로 3가 입정동에 살다가 급격한 도시화로 주거지역이 급격히 축소되어 학생 수가 줄면서 다니던 청계초등학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아현동으로 이사하고 미동초등학교로 전학했던 해이기도 하다. 나는 그때 고가도로가 길 위로 건설되는 모습을 지켜봤었는데, 우람한 교각과 크게 커브진 길의 느낌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세월이 흘러 도시의 결이 달라지고 시대의 상황이 달라지는 바람에, 주변이 슬럼화되고 지역경관을 해친다는 평가와 보수하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의해 아현고가도로는 2014년 봄 한 달 만에 철거되었다.
1969년 3월22일에는 청계고가도로가 완공되었다. 복개된 청계천 위로 활기차게 뻗어있던 삼일(청계)고가도로는 당시에 높은 빌딩이 별로 없는 서울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공중의 길이었다. 어릴 때 간혹 택시를 타고 청계천 끄트머리에서 고가도로로 서울을 횡단하던 때의 짜릿함이 지금도 생생하다. 삼일빌딩 앞에서 크게 좌회전하며 명동성당 쪽으로 꺾어질 때는 마치 청룡열차를 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같은 날에 퇴계로에서 만리동 쪽으로 넘어가는 고가도로가 착공되었다. 퇴계로에서 만리동, 아현동으로 가자면 서울역 앞으로 해서 염천교를 넘어서 빙 돌아가던 길을 단축하는 서울역 고가도로였다.
![]() |
서울시가 계획 중인 서울역 고가 공원 예상 조감도. 서울시 제공 |
서울의 고가도로는 모두 속도를 위한 장치였기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고가도로는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 시원함과 짜릿함이 마치 금세 상하는 여름철 채소와 같이 너무나도 빨리 시들어버리면서 서울의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고가도로들은 늘 차들을 가득 담고 있는 공중의 주차장 노릇을 하다가 장렬히 하나 둘씩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런 아쉬움 때문인지 낡은 고가도로를 철거할 때마다 “하이라인처럼 고치자”는 이야기가 불쑥불쑥 솟아나고, 하이라인은 어쩌고 하며 아쉬워하는 긴 탄식의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물론 오래된 것, 정든 것을 마치 다 먹고 난 잔칫상 치우듯 사정없이 매몰차게 빠른 속도로 해치워버리는, 엉뚱한 데서 신속한 우리나라 행정의 실행력도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외국의 성공사례를 그대로 답습하고자 하는 빈약한 상상력도 문제이긴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호주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하우스를 연상하며 물만 있으면 그런 오페라하우스를 짓고야 말겠다고 결의를 불태우다가, 그래서 한강 노들섬에 오페라 하우스를 짓겠다며 수백억원 들여 설계를 하고 난리를 치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어이가 없다.
그리고 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역 고가도로를 하이라인 같은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1970년 준공된 서울역 고가도로는 그간 여러 차례의 안전진단 결과 철거가 불가피한 수준(D등급)으로 파악되어 철거 및 주변도로 개선을 위한 계획이 수립되던 중이었다. 서울역 고가 재생을 통해 도시 인프라 이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갖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을 사람 중심의 공간으로 시민에게 되돌려주며, 문화유산과 문화시설이 연결되고 관광명소화되면 침체에 빠진 남대문시장을 비롯한 지역경제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 서울시의 입장이다. 10월 국제현상 공모를 실시해 내년 중 설계와 착공, 2016년 말 완공할 계획이라 한다.
![]() |
낡아서 용도 폐기한 고가철도를 이용해 높이 9m, 길이 2.5㎞의 공중정원으로 재탄생시킨 뉴욕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 출처= www.archdaily.com 사진=이완 반(Iwan Baan) |
계획을 세우는 데 6년, 설계공모부터 완성에 10여년이 걸린 하이라인 계획에 비해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완성하겠다는 급박한 스케줄은 속도를 버리고 여유를 되찾기 위한 공원 계획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교통에 대한 대책, 차량용 도로에 보행자들이 드나들 경우의 안전대책, 피난을 위해 갖추어야 할 출입로, 관광객과 공원 조경으로 구조체가 부담하게 될 하중 검토 등 차분히 고려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혁명’으로 일컬어지던 시대를 가로지르며 ‘현대’와 ‘발전’을 상징하던 것들, 가령 공장이나 철도 같은 산업 기반 시설들이 불과 한두 세기만에 퇴물 취급을 받고 철거되거나 재생 대상의 유산으로 간주되는 것은 우리가 그토록 열광했던 ‘속도’의 아이러니다.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만든 것이 약 200년 전이고, 1825년 영국에서 처음 철도가 개통된 이래 약 100여 년간 세계는 오직 더욱더 빠른 속도를 얻기 위해 달려왔다. 그렇게 도시로 수많은 사람을 끌어들여 이른바 근대적 삶의 형식을 이끌었던 공장들이 기계 대신 예술작품이 가득한 미술관이 되고, 기차가 더 이상 달리지 않는 선로가 꽃과 풀이 가득한 녹지가 되기까지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사례들의 이면에는 충분한 주민 의견 수렴과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한 오랜 시간의 노력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프롬나드 플란테나 하이라인은 그곳이 단지 잘 꾸며진 공원이어서가 아니라 도시가 만들어지고 쇠락해간 시간의 역사를 보여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발길을 이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도시 풍경을 읽는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계획을 비롯한 재생계획의 근본에 관광명소나 랜드마크, 경제 활성화 같은 단어 대신에 ‘시간’과 ‘사람’에 대한 배려가 가장 앞서야 하는 이유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공동저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