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올 여름 터키 빌켄트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가게 돼 6개월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 그런데 9월 개학을 앞두고 꿈에 그리던 유럽을 먼저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독일에 사는 친구와 함께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지난달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며 직접 보고 느낀 여행기를 시리즈로 실어본다.<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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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그라드 중심가의 트램 정류장. |
지난 15일 열린 유로 2016 축구예선 경기 때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선수들의 집단 난투극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발칸반도에 위치한 세르비아는 옛 유고연방의 주축 국가이며 1990년대 초 해체되는 과정에서 ‘코소보 인종청소’ 사건 등으로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은 나라다.
일단 기차역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길부터 막막했다. 호스텔 홈페이지에서 찾아가는 지도를 캡처해 뒀지만 도통 어느 방향으로 갈지, 버스 등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현금은 있어야 하니까 기차역에 있는 환전소에 줄을 섰다.
세르비아 화폐 1디나르(SRD)는 12원쯤 한다. 환전소 직원에게 1유로를 내밀었더니 고개를 젓는다. 액수가 너무 적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5유로를 내밀었더니 역시나 안 좋은 표정으로 디나르를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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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그라드 역사건물. |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역에서 나오니 아직 어둑어둑하다. 앞뒤로 배낭을 두 개나 맨 동양 여성이 두리번거리는 걸 본 택시기사가 걸어오면서 “택시! 택시!”를 외친다. 난 “노노노” 하면서 기사 아저씨에게 트램(노면전차) 정류장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기사 아저씨는 뭔가 손가락으로 가르쳐주는가 싶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트램 익스펜시브 텐 유로! 택시 파이브 유로!”라고 말한다. 트램이 10유로씩이나 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건지 어이가 없어 화도 안 났다. “거짓말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그냥 무시하고 걸어갔다. 문득 남부지역 최대 도시인 니쉬로 가는 교통편을 미리 예매해야겠다는 생각에 티켓 파는 곳을 찾아다녔다.
나중에 알았지만 간 곳은 버스티켓 파는 창구였고 영어로 니쉬가는 티켓을 달라고 했더니 “노 잉글리시” 하면서 옆 창구를 가리킨다. 다시 얘기하고 카드를 내밀었는데 결제가 안 된단다. 환전을 적게 해서 표를 못 사고 대신 트램 정류장이 어딘지 물었더니 내가 걸어온 반대방향이라고 가르쳐준다. 아까 트램 정류장 반대로 걸어가는데 막지도 않은 그 택시기사가 진짜 얄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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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그라드 시내 전경. |
트램이 도착했는데 카드 같은 걸 찍고 타는 사람이 두 명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탄다. 1년권 이런 걸 끊은 사람인가? 트램 기사한테 영어로 얘기하니까 못 알아 듣는다. 뭐라 뭐라 하는데 이번엔 내가 못 알아듣겠다. 왓? 이랬더니 옆에 있던 승객이 그냥 앉아도 된다고 귀띔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르비아는 우리나라 교통카드처럼 충전하고 카드 리더기에 대는 식으로 교통요금을 낸다. 그런데 대부분 무임승차를 하고 실제로 그런 식으로 요금을 내는 사람은 소수란다. 기사가 저 앞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다들 무임승차 한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네 번째 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 하나, 둘 세는데 트램이 자주 멈춰서 헷갈린다. 정류장이라서 선 건지, 그냥 멈춘 건지 알 수가 없어 결국 또 앞에 있던 소년에게 물어봐서 내렸다.
중앙 트램 정류장에서 인도로 건너려는데 어떤 여자애가 와서 말을 건다. “혹시 헤도니스트 호스텔 찾느냐”고 하기에 맞다고 했더니 목적지가 같다며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호주에서 왔다는 케이티(23)라는 친구다. 같이 찾아 가는데 세르비아 여성 한 분이 다가와 “무엇을 도와줄까요?”라고 묻는다. 헤도니스트의 도로이름주소를 말했더니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그리로 가라 한다. 쭉 갔더니 숙소가 나오고 친근하고 위트 있는 리셉션 가이들이 우리를 맞아줬다.
배낭은 일단 체크인 시간 될 때까지 리셉션 옆에다 둔 다음 일기 쓰고 칠아웃(chill out) 룸에서 쉬고 와이파이가 되는지 보고 이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피곤하지만 잘 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근데 오전 11시부터 워킹투어가 있다. 케이티, 그리고 태즈메니아 출신 호주남자애 한 명 더, 또 멜번에서 온 호주 남자애 두 명을 포함해서 5명이 미팅장소로 나갔다. 나만 빼고 다 호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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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중심가의 한 빌딩이 내전 때 폭격 맞은 흉측한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
햇빛이 장난이 아니었다. 만나기로 한 리퍼블릭 스퀘어로 가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어제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2시간밖에 못 잤다는 괴짜 포스 남자애가 가이드였다. 인도 사람처럼 생겼는데 세르비아 토박이란다. 길쭉길쭉 노란 티셔츠가 왠지 미묘하게 잘 어울리는 이 가이드는 눈부신 햇빛에 얼굴을 찡그린 채로 위트 있고 유창하게 영어로 안내를 시작했다.
만난 곳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해 세르비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카파나 거리와 스카다리야 거리까지 갔다. 이곳은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보행자 전용거리다. 고급 레스토랑과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고 밤이 되면 멋진 음악과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넘쳐나는 낭만의 도시다.
깜짝 놀란 건 여기서 세르비아 사람들의 밤문화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라키아 병을 꺼내 컵에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다. 프리워킹투어에서 대낮에 술을 나눠준다. 알코올 도수가 40~50도 되는데 어차피 부다페스트에서도 독한 술을 마셔 봤으니 그리 겁나지는 않았다.
술을 따르다 보니 투어 참가인원이 많아서 컵이 모자랐다. 케이티랑 하나를 나눠 마시는데 케이티가 살짝 맛보더니 못 먹겠다고 피해 내가 거의 마셨다. 라키아는 세르비아 전통술인데 도수가 높으면서도 달짝지근하다. 온몸에 퍼지는 뜨끈한 기분과 입안의 달달함이 마음에 들었다.
세르비아에서는 라키아를 쉽게 맛볼 수 있다. 집에서도 많이 담그고 식당과 술집마다 라키아를 팔 정도로 흔한 술이다. 오늘 투어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든 부분은 라키아 시음이었다.
베오그라드(세르비아)= 김슬기라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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