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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이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촬영한 모습 |
우리는 보이지 않는 천재와 경쟁하다가 피투성이의 약자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을 포기하고 내려놓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만만 표출하다 때 늦은 사춘기에 괴로워한다.
중학교 국어교사로서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존재’를 인식하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특별하게 만든 비밀의 방에서 한 아이가 자기 얘기를 털어놓고 그것을 들은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통을 하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토론수업의 기본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존재’를 인식한 것이고 나를 드러내 얘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독서토론논술, 독서이력만들기와 시사토론반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에게 제트기가 음속(1마하=초속340m)을 돌파하기 위해 엔진 힘을 두 배로 키워도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우리는 속도와 스펙의 전쟁 속에서 경쟁하며 무엇을 배우는지 잊고 살아간다. 더 빨리, 더 높이만 외치며 냄비 속의 개구리만을 키워내고 있다.
아이들은 그것보다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웃으면서 그리고 다양한 색깔로 자신의 빛을 내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렇게 시작된 게 나만의 교육방식인 ‘일곱 빛깔 무지개’ 프로젝트다. 색깔별로 주제를 정해 아이들과 같이 소통하고 공감해 나가는 교육법이다.
◆빨강= 아이들의 얼굴에 여드름이 빨갛게 올라왔다. 청춘의 상징이다. 건들면 아프고 억지로 터트리면 생체기가 나는 것처럼 청춘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했다. ‘성(性)’에 대해 환상에 빠져 있는 10대 소년의 성장담을 그린 책 ‘동정 없는 세상’을 읽고 함께 토론해보니 ‘성’에 대해 숨어서 바라보는 음란물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고 공감하는 등 아이들의 눈망울은 어느새 반짝이고 있었다.
‘사랑’에 대한 열정만큼 뜨겁게 책에 쏟는 2시간은 온전히 아이들 시간이었다. 더 나아가 부끄러워하던 모습이 어느새 ‘나영이 사건’으로 번졌고 성폭력과 성범죄, 성관계 그리고 청소년이라는 여러 주제를 논하기도 했다.
◆주황= 언제나 위험한 순간에 있다는 중학생. 청춘이라 불리는 아이들 모두가 활화산이라 구명조끼와 구명튜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험하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시선이다. 이혼가정, 아르바이트, 분식집이라는 소재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너무나 가까운 존재였고 경제적 빈곤이 두려워 경쟁이라는 궤도에 자신의 몸을 올려놓는다. 그 경쟁이 낳은 사회의 다양한 인간상을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탐구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경제적 빈곤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지를 살피는 과정에서 ‘황제노역’이라고 불리는 사회현상을 신문으로 접할 수 있도록 했고 습관적으로 우리가 하는 다양한 행동의 비용을 줄이는 것도 연구해봤다. 아이들이 매일 학원을 오가며 사먹는 삼각 김밥과 바나나우유, 탄산음료와 라면 등 간식비가 학원비보다 더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기도 했다.
◆노랑= 책 ‘싱커’를 통해 희망과 꿈에 대해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했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나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너는 누구에게 싱커하고 싶니?”라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쉽게 얘기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만 묵묵히 읽게 했다. 나중에 아이들은 동식물의 이름을 대어가며 싱커하고 싶은 것과 그 이유를 분명하게 얘기했다.
아이들은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알고 있는데 그것을 꺼내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이제 소설 ‘죄와 벌’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됐다. 어른들은 늘 신문과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에게 ‘세상 말세’라고 하지만 정작 신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가 중요성을 부여해야하는 것들은 들여다보기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순수한 아이들에게 색안경을 씌어주고 있었다.
◆초록= 소설 ‘완득이’를 읽다 보면 아이들의 콤플렉스에 대해 충분히 얘기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나를 마주하지 않고 타인을 통해 나를 만나기 때문에 너무 많은 거짓말로 자신의 뿌리를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해답은 다시 책에서 찾도록 했다.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우아한 거짓말’. 이 책에는 ‘원래’라는 말의 힘은 무섭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원래’라는 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인물을 얘기했다. “조선의 영조 어머니 신분은 무엇이었는지 아니? 무수리였어” 아이들은 “뭐 그런 것을 얘기하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영조의 어머니가 숙종이 자꾸 왕으로 보이면 사랑을 못했을 거야. 다른 조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숙종과 충분히 사랑을 할 수 있었고 영조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지”라는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랑= ‘꾸뻬씨의 행복여행’이란 책을 통해 특별한 무언가를 찾는 방법을 알아보고 일주일 동안 무언가를 세밀하게 관찰해 자신의 낯선 모습을 기록하게 했다. 매일 내가 일어나서 하는 것 등을 적어서 다음주에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관찰하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자신을 관찰하다 보니 익숙했던 것이 낯설어보였다는 것이다.
이번엔 ‘엄마를 부탁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얘기를 덧붙여보니 눈물을 훔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슴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 안의 반짝이는 별을 찾을 수 있었다.
◆남색=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필요했다. 이 시점에서 ‘허생전’, ‘허생의 처’,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허생’이라는 인물과 박지원을 꼼꼼하게 탐구하고 허생의 처와 왜냐선생이 영웅이었는지를 고민해 보았다. 아이들은 당황했다. 항상 줄거리에 집착하는 것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영웅의 정의는 다양했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영웅의 정의에 어울리는 인물들을 꿰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다양한 신문의 인물자료를 주고 영웅적 요소를 찾게 했고 이를 책들과 연결 짓도록 했다. 결국 아이들은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켰다.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라= “이혼은 가족문제일까 가족문제의 해결일까” “청소년의 아르바이트는 득일까 실일까” 등의 논제를 두고 ‘나는 죽지 않겠다’라는 책을 통해 아이들과 재미있게 토론했다. 또 실업계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꼴찌들이 떴다’와 ‘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를 함께 읽어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문제를 피하려하지 않았고 마주하려 했다. 아마 이것이 ‘같이의 가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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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 |
아이들에게 독서와 신문만큼은 ‘빨리’가 아닌 ‘천천히, 여유롭게, 느끼면서’ 할 수 있게 알려주고 싶었다. 나의 목표는 아이들이 부름켜가 있는 나무처럼 자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대나무 같은 딱딱함이 아니라 나무의 삶처럼 단단해지고 두꺼워지길 바라는 목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속이 텅 빈 대나무처럼 세상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테 모양이 자신의 지문처럼 삶을 풍성하게 하는 시간으로 채워지길 바랄 뿐이다.
정규 수업이 끝난 시간에 부지런히 청소하는 아이들 틈새를 비집고 방과 후 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연스러운 엄마 미소가 생긴다. 오늘도 아이들은 고민에 빠진 얼굴이다. “자, 얘들아 나와 함께 가자!”
이민이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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