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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제중원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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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17 21:25:35 수정 : 2014-09-18 0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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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구 계명대가 올해를 ‘설립 115주년’이라고 선포해 화제가 됐다. 1954년 문을 연 계명대가 역사를 100년도 넘게 잡은 근거는 1899년 세워진 제중원(濟衆院)에 있다. 대구·경북지역에 처음 생긴 현대식 병원 제중원은 오늘날 계명대 부속 동산의료원의 전신이다. 당시는 제중원이 ‘병원’을 뜻하는 보통명사처럼 쓰였다. ‘아니, 계명대도 제중원의 후손이야’ 하고 깜짝 놀랐다가, 우리한테 익숙한 그 제중원과 다른 제중원임을 알고 피식 웃었다.

계명대와 제중원의 관계에 새삼 눈길이 간 것은 얼마 전 정남식 연세의료원장이 연 기자간담회 때문이다. 정 원장은 “올해 개원 129주년을 맞은 제중원을 옛 건물 그대로 복원해 환자들을 위한 ‘힐링캠프’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가 언급한 제중원은 1885년 고종의 어명으로 설립한 일종의 국립병원으로, 한국 역사상 첫 서양식 병원에 해당한다.

“제중원은 연세의료원의 출발점”이라고 못박은 정 원장은 “제중원을 복원하는 것은 곧 한국 의료사의 혁신을 뜻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제중원의 적통을 놓고서 서울대와 다툼이 있지 않으냐”는 어느 기자의 물음은 뒤이은 다른 질문들에 파묻히고 말았다.

서울대와 연세대가 서로 제중원이 자기네 조상이라며 티격태격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서울대는 제중원이 국립병원이었던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연세대는 국립병원으로 출발한 제중원이 1904년 민간 주도의 세브란스병원으로 탈바꿈한 데 방점을 찍는다.

김태훈 문화부
지금도 서울대병원의 공식 연혁을 들춰보면 1885년 제중원 개원이 맨 앞에 있다. 연세대의 대학 연혁에도 “1885년 고종이 제중원이란 병원을 설립하게 한 것이 세브란스 의과대학의 효시”라는 문구가 나온다. 둘 다 맞다면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한 부모가 동시에 낳은 쌍둥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럼 제중원 개원 130주년이 되는 2015년에는 이 쌍둥이가 한자리에 모여 나란히 축하 떡을 자르는 흐뭇한 광경을 볼 수 있어야 하겠는데, 아마도 성사가 어려울 듯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처럼 옛것을 중시하는 태도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단순히 남의 이목을 끌거나 자신의 연륜을 부풀릴 목적으로 옛것을 끌어다 쓰는 건 별로 아름답지 않아 보인다. 돌이켜보면 자기네 학교 연원을 제중원에서 찾으려는 이른바 ‘제중원 마케팅’이 가장 뜨거웠던 때는 2010년이었다. 한 방송사가 방영한 드라마 ‘제중원’의 대중적 인기에 편승하려는 의도가 짙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고종이 처음 국립병원 건립을 명하며 붙인 이름은 광혜원(廣惠院)이다. ‘구호를 널리 베푸는 집’이라는 뜻이다. 광혜원의 뒤를 이은 제중원 역시 ‘대중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우리가 제중원 하면 기억해야 할 점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라는 사실이 전부가 아니다. 병원의 사명은 각종 질병과 사고로부터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것임을 제중원이란 이름이 새삼 일깨워 준다.

김태훈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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