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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소원수리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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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일병님. 억울해서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다 까발리겠습니다.” 야외훈련을 마치고 텐트로 돌아온 노 이병이 폭탄발언을 했다. 친구의 작은아버지가 육군 참모총장인데 휴가를 나가면 고참병들의 가혹행위를 폭로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고참병들에게 가슴을 구타당한 노 이병은 극도의 고통을 호소했다. 갈비뼈에 금이 가거나 심각한 근육통이 생겼음이 분명했다. 그런 몸으로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산과 들을 뛰어다녔으니 통증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겁이 덜컥 난 쪽은 오히려 필자였다. 노 이병의 후견인이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필자도 관리 소홀로 질책을 받을 게 뻔했다. 노 이병 마음을 돌리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어깨를 두드리며 “참을 인(忍)자를 하나 더 가슴에 새기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의 위로가 통했던 것일까. 노 이병은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잘 넘겼고 군대생활 잘한다고 조기 진급해 분대장까지 했다. 구타가 일반화됐던 30년 전 군대 생활 추억이다. 소원수리(訴願受理)라는 고충신고제도가 있긴 했다. 그러나 무용지물이었다. “소원수리를 하면 오히려 더 피곤해진다”는 고참병들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후임병들은 일사불란하게 ‘이상무’를 쓰거나 백지로 내곤 했다. 무기명이라 비밀이 보장될 것 같지만 내부고발자 신원은 금세 드러났다.

소원수리가 제 기능을 했다면 노 이병이 육군 참모총장에게 직접 신소하려는 생각도 안 했을 터이다. 그래서 “소원수리는 시험문제도 아닌데 정답이 정해져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겼다. 요즘이라고 다를까. 소원수리에 대한 병사들의 불신은 여전하다. 소원수리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가 개선이 안 되고(46.9%), 비밀유지가 부실하며(26.6%), 불이익이 우려된다(21.4%)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2012년 소원수리를 냈다가 부대원들에게 집단따돌림을 받던 육군 22사단 박모 일병이 K2 소총 총부리를 입 안에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박 일병은 소원수리를 하면 고통스런 환경이 개선될 걸로 믿었지만 돌아온 건 ‘배신자’ ‘고자질쟁이’라는 낙인이었다. ‘구세주’가 되어야 할 중대장은 한술 더 떠 “내 등에 칼을 꽂았다”며 몰아붙였다. 소원수리제도가 보복을 부르고 유서까지 쓰게 한다. 전 사병을 대상으로 소원수리제도의 문제점과 비정상적 운영 실태에 대한 소원수리를 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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