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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주부의 한국생활 적응기]"한국인 가족의 힘은 孝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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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29 15:58:17 수정 : 2014-07-29 22: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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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다문화 인구가 150만명을 넘어섰고, 부모 중 한쪽이 외국인인 다문화가정 인구도 50만을 상회한다. 전국 어디서든 다문화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더 이상 '신기한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외국인이 낯설고 물 선 이국의 문화에 적응해 살아간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다문화인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보고 느꼈던 적응기를 직접 작성했으며, 이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⑤가족 문화

한국에 와서 시댁인 대전에 가려고 서울역에서 처음 기차를 탔을 때의 일이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지금처럼 KTX가 없을 때였고 무궁화호인지 통일호를 탔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한글은커녕 말도 잘 못하는 긴장 상태에서 혼자 무조건 기차에 올랐다. 내 좌석은 세 명이 앉는 자리의 통로 쪽이었다. 가운데는 남자, 창가 쪽에는 어떤 여자 분이 앉아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커피를 파는 점원이 지나가는데 가운데 남자분이 양쪽에 있는 우리에게도 커피를 사줬다. 서툰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하고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추운데다 긴장까지 해서 그런지 꽁꽁 얼어붙은 몸은 어느새 사르르 녹아내렸다.

내가 외국인이지 모르고 커피를 사주었겠지만 그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일이 두고두고 기억난다. 한국에서는 먹을 것이 있으면 혼자 먹지 않고 나눠 먹는다고 하는데 커피를 마실 때도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남편에게 그때 일을 얘기했더니 “옆에 여자들이 앉아서 그래”라며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그동안 한국에 살면서 그런 호의적인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버스를 탔을 때는 뒷자리에 앉은 전혀 모르는 아주머니가 먹어보라고 삶은 계란을 준 적도 있다.
 
한국사람들의 정(情)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족주의’에서부터 나온 것이 아닐까 혼자 결론을 내본다.

‘가족’이라는게 같은 혈통을 지니기도 하지만 언제나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처럼 지내려고 하면 항상 같이 밥을 먹어야 하고 그래야만 비로소 가족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렇게 지낸 사람들이 친형제가 아니라도 언니, 형, 누나, 동생 관계가 형성된다. 또 결혼 전에는 삼촌, 이모라는 역할을 거쳐 결혼을 하면 아빠 엄마가 되고 친족 안에서 큰아버지 큰어머니 또는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가 되는 게 신기했다.

한국에서는 결혼만 하면 집안에 신경 쓰는 일이 갑자기 많아지고 바빠진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가족간의 돌잔치, 환갑잔치 등에 친인척은 물론 주변의 지인들까지 많은 사람을 초대해 축하 받기를 원한다. 한국에서는 애경사가 있을 때마다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반드시 찾아 가는 것이 세상사는 도리라 여긴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가족행사 자리에는 아무래도 여자들의 역할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친가족이 아니면 오빠나 언니라고는 절대 부르지 않는다. 또 친족 안에서 큰아버지 큰어머니라고 부르는 호칭도 아예 없다.

영화 '조용한 가족'의 한 장면.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인을 초대할 때도 아주 친한 경우에만 부른다. 초대한 손님을 대접할 때는 집보다는 외식을 주로 한다. 그래서 한국 여성보다 집안에서 하는 일은 훨씬 적고 아이들이 크면 여자가 맞벌이를 하는 여유가 생긴다. 반면 한국의 여성들은 일하면서 집안일까지 하기에는 너무 힘들고 벅차다.
 
일본은 거의 개인주의 사회가 돼 버렸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혼도 가족보다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여자들이 결혼하자마자 속박당하는 느낌은 한국보다는 매우 적다.

그만큼  자유로움을 얻는 대신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가족 전체가 나서는 게 아니라 부부가 직접 해결하려는 경향이 짙다. 더 나아가 부부 사이에도 개인적이고 혼자의 힘으로 풀어가려는 의식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고독감을 느끼게 되고 나홀로 고립된 사회가 돼 버린 것이다.
 
한국가족의 기본은 효(孝)의 마음인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나이 든 부모를 모시고 병원을 찾는 자녀나 매주 부모님을 뵈러 가는 자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한국에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더 진하고 끈끈한 것 같다. 때로는 그것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기도 하고 고부간 갈등을 빚는다. 그래도 외국인들은 한국의 부모와 자식 간 관계를 지켜보면서 부러워하는 동시에 자기가 효도를 못한 데 대해 반성하기도 한다.

노인을 자기부모처럼 공경하고 인간관계에서도 친형제 친자매처럼 가족으로 생각하는 한국의 가족주의야말로  제일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 아닌가 싶다.
 
요코야마 히데코 리포터

삽화= 권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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