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제국주의에 맞서 비폭력 저항운동을 주도했던 마하트마 간디(1869∼1948)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하지만 간디는 아직도 논쟁적인 인물이다.
8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는 내년 초 영국 정부가 간디의 비폭력주의를 기념하기 위해 런던 의회 광장에 간디 조각상을 세운다는 소식을 전하며 간디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9가지 사실을 소개했다.
간디는 1893∼191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내며 인도인의 인권 증진을 위한 운동을 벌였으나 인종 평등을 옹호하진 않았다. 인도인이 아프리카인과 같은 대우를 받지 않는 것만이 목표였다. 또 간디는 1918년까지 대영 제국의 숭배자였다. 영국군에 자원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가 하면, “영국인들 없이 인도는 존재할 수 없다”거나 “영국을 위해 목숨을 내려놓아야 한다”며 모병에 앞장섰다.
이러한 간디의 관점은 1919년 암리차르 대학살을 계기로 변했다. 1919년 레지널드 다이어 장군 부대가 영국의 식민 지배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을 향해 발포해 최소 379명이 숨지자 인도가 완전한 독립을 성취해야 한다고 돌아섰다. 하지만 대학살 당시 간디는 목숨을 잃은 시위자들에 대해 “그들이 영웅이라면 적어도 막대기를 이용하거나 칼을 뽑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간디는 독일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1940년 12월 히틀러에게 평화를 호소하는 편지에서 히틀러를 ‘친구’라고 부르며 “당신의 조국에 대한 당신의 용기나 헌신을 의심치 않는다”고 썼다. 이에 대해 텔레그래프는 “성인으로 칭송받는 간디는 히틀러만큼이나 복잡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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