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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논단] 동북아평화 협력 구상 물 건너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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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전쟁범죄 교묘하게 은폐 시도
갈등의 연속… 정부 외교력 시험대에
일본 정부가 지난 20일 고노담화 검증 결과를 내놓았다. 고노담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원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에 따라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것으로,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베 정부는 검증을 빌미로 고노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일 정부 사이에 문안 조정이 있었다는 주장을 제기함으로써 고노담화가 마치 한·일 양국 간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고노담화는 일본 스스로 전쟁범죄를 인정한 자백에 다름아닌데 진술의 임의성을 부인함으로써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교묘한 방식으로 은폐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다.

고노담화 검증은 전쟁범죄국가라는 일본의 이미지를 최대한 희석시키고자 하는 아베 정부의 전략적 선택이지만 그 여파가 동북아정세의 불안정성을 더욱 키우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흐름은 현 정부가 집권 초부터 추진해오던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의 실현을 방해하는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올해 벽두부터 회자돼온 ‘통일 대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동북아지역의 정세가 안정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통일 한국의 실현에 우호적인 국제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뜻이다. 독일 통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주변 강대국의 양해와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최소한 묵인해야만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그 문을 열 수 있다. 동북아지역에 팽배해 있는 불신과 대결의 구도를 미래를 위한 신뢰와 협력의 구도로 바꿔가자는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통일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행사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아베 정부의 판 흔들기로 인해 우리 정부가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이 현저하게 축소되고 있다. 우선 한·일관계는 당분간 냉기류가 흐르다 못해 꽁꽁 얼어붙을 전망이다. 과거사 문제로 인해 한·일 간에 형성된 한랭전선이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의 이륙 자체를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다.

문병철 서울대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국제정치학
사실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보다 구조적인 원인은 소위 ‘아시아 패러독스’에 있다. 동북아 역내 국가들 사이에 경제교류가 늘면서 상호의존도가 높아지는 데 반해 영토분쟁, 군비경쟁 등으로 정치·안보 측면에서 역내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은 상호의존과 안보딜레마가 공존하는 아시아 패러독스라는 여건 속에서도 갈등보다는 협력에 방점을 찍고 우리의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강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이다.

현실은 우리 정부의 외교력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패권경쟁, 중국과 일본 사이에 가로놓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 한국과 일본 사이에 풀리지 않는 과거사 문제, 언제 해결될지 심지어는 해결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북핵문제 등 켜켜이 쌓여 있는 외교적 갈등의 정글 속에서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의 진전은 눈을 씻고 둘러보아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일본의 흔들기가 계속된다고 해도 아시아 패러독스가 당장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도외시할 일은 아니다. 동북아 평화 협력의 실현은 통일에 유리한 한반도 주변 정세의 구축을 위해 필요한 징검다리를 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동북아 외교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외교적 이니셔티브 확보를 위해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기다.

문병철 서울대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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