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틱 헤븐’(2011) 이후 3년 만에 그가 돌아왔다. ‘장진표’라는 수식어가 달린 코미디가 아닌 ‘감성 누아르’ 영화 ‘하이힐’(제작 장차,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을 통해 이번에는 우리 사회 성(性)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하이힐’은 17대 1은 기본, 그 앞의 적은 몇 명이 됐든 단숨에 제압해버리는 강력계 형사 지욱(차승원 분)이 자신 안의 여성성만은 제압하지 못하고 여자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전형적인 액션 누아르의 스토리에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의 감성 드라마가 덧입혀져 장진 감독만의 독특한 세계를 완성시켰다. 동성애를 느끼고 자신의 성을 바꾸고 싶은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관객들이 불편하지 않게 그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되는 건 장진 감독 특유의 코미디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액션 누아르에 코미디라니, 낯설고 의아하게 영화를 바라보는 이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코미디가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분위기를 해치지는 않을 정도로 적당히 쓰인 느낌이다. 오히려 요즘처럼 유머가 부족한 한국 영화계에 장진 감독의 귀환이 가문의 단비처럼 느껴질 정도다.

장진 감독은 모든 공(功)을 차승원에게 돌렸다. 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마초인 그에게서 ‘여성성’을 발견해낸 그의 안목도 한몫했다. 여기에 제작진은 다채로운 색깔의 조명을 통해 지욱의 여성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영화를 보고나서도 차승원의 눈빛은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낮에는 깡패들도 벌벌 떨게 만드는 열혈 형사, 밤에는 남몰래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어보는 천생 여자. 상반된 두 이미지를 전혀 거부감 없이 소화해낸 데에서 데뷔 18년차 베테랑 배우의 내공이 느껴졌다. 슬픈 눈빛, 섬세한 손짓과 행동 하나 하나에서 그의 연기적 고민이 역력했다.
코미디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지만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코믹함을 쏙 뺀 채 연기했다. 내면의 욕망과 현실의 벽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거친 액션을 쏟아내면서도 그의 눈빛은 늘 촉촉이 젖어있다. 시종일관 진지한 연기는 관객의 연민과 모성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다만, 중반부 이후 마치 예정된 수순처럼 흘러가는 전형화된 스토리는 영화에 대한 몰입감을 떨어뜨린다. 액션에 결정적 한 방이 있다면, 스토리에도 한 방이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르의 특성상 잔인한 폭력신에 대한 호불호도 확실히 갈릴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124분. 6월4일 개봉(3일 전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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