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 3대 왕인 무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휼은 주몽의 뜻을 이어받아 잃어버린 땅 ‘부도’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 와중에 수많은 신하들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들까지 잃게 된다. 무휼은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부도’로 향해야만 했을까. 대의를 이루기 위해 숱한 희생을 치르는 그의 모습은 생각해 봄직한 화두를 던진다. 지금은 개인들의 욕망을 누르며 어디론가 다 함께 급히 향하기보다는 구성원들 서로를 다독이며 위로하는 일이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더욱 시급하지 않을까. 한편 호동 왕자는 아버지 무휼과 대조적으로 아무도 피 흘리지 않고 모두 함께 웃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안타깝게도 미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자결하고 말지만. 극의 말미에 이러한 호동에게 가장 밝은 조명이 떨어지는 것에서 반성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공동체의 가치와 휴머니즘에 대한 메시지를 읽어볼 수 있다.
![]() |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푸르른 날에’는 역사 속에서 청춘들이 잃어버린 사랑과 꿈, 해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명성황후’의 백미인 마지막 장면에서도 모든 인물들이 흰 옷을 입고 전진하며 ‘백성이여 일어나라’를 부르며 아직 풀지 못한 역사적인 상처를 상기시킨다.
이러한 장면들은 잔혹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숱하게 목숨을 잃은 개인들을 애도하는 의미를 지닌다. 의정부 음악극축제에서 초청 공연된 러시아 ‘트캉카 극장’의 ‘넷 렛’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세상에 흥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들의 인생은 마치 행성의 역사와 같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특별한 것이 있고, 마찬가지로 서로 닮은 행성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와 함께 했던 첫 눈도, 그의 첫 키스도 … 함께 했던 이 모든 것이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의 거장 시인 옙투셴코가 쓴 시의 한 구절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현종의 시 ‘방문객’의 한 구절도 떠올려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공연장은 이러한 행성 같은 중력을 지닌 소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음을 나누는 자리이다. 이는 산 자와 죽은 자, 현재와 과거가 해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산 사람의 미래를 꿈꾸게 하는 것이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 사실적이든 양식적이든 비극적이든 희극적이든 관계없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과 휴머니즘이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학교 연극학과 객원교수
<세계섹션>세계섹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