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빼면 모두 월드컵 우승 경험을 지닌 '축구 명가'다. 그들과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시아 대륙의 전체적인 축구 수준을 생각한다면 똑같이 평가할 수 없다. 그래도 8번 연속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돌이켜보면 참 믿기지 않는 일이다. 헝가리에게 0-9, 터키에게 0-7 등 단 2경기 참패로 짐을 싸야했던 저 멀리 1954년 스위스 월드컵까지는 갈 것도 없다. 그야말로 참가에 의의를 두었던 첫 단추 이후 한국은 또 32년 동안 세계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다 1986년 멕시코 대회를 통해 다시 월드컵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 뒤로 2014년까지 8회 연속이다.
모든 것이 열악하던 시절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출전이 있었기에 지금의 8회가 가능했다. 제3자가 봤을 때도 지금의 대한민국 축구가 그때 그 대한민국이 맞을까 싶은데 당사자들의 기분은 어떨까. 20일 파주 NFC에서 진행된 ‘축구대표팀 역대 감독 오찬 모임’에서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주재로 마련된 이번 오찬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제자이자 후배인 홍명보 감독을 응원하기 위한 자리였다. 김정남(1986년) 감독을 비롯해 이회택(1990년), 김호(1994년), 차범근(1998년), 허정무(2010년) 등 역대 월드컵 감독들이 모두 모였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에 큰 공을 세운 조광래 감독도 참석했다.
오랜 만에 한 자리에 모인 축구계 큰 별들은 자연스레 과거에 대한 회상에 잠겼다. 이내 그들의 입에서는 후회와 관련된 내용들이 쏟아졌다.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었다.
김 감독은 “남미 팀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에 비하면 이제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자산을 갖게 됐다”면서 “지금 후배들은 월드컵을 보면서 자란 세대이고, 월드컵을 경험한 세대다. 그 때(1986년) 우리에게도 경험과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다”며 추억을 곱씹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이회택 감독도 부족했던 준비를 가장 씁쓸해했다. 당시 대표팀은 아시아 지역예선을 무패로 통과해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본선에서 3전 전패, 역대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이회택 감독은 “대회 1주일 전에서야 이탈리아에 들어갔다. 그 땐 언제쯤 가야 적응하는데 좋은지도 몰랐다”고 털어놨다.
너무 늦게 격전지에 도착한 탓에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이 감독은 “벨기에(0-2패), 스페인(1-3패), 우루과이(0-1)와 붙었는데 3차전에 가서야 선수들의 컨디션이 올라오더라”며 “만약 2~3주 전에만 이탈리아 땅을 밟았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정말 ‘태극 호랑이’들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참가했던 김호 감독은 “너무 젊은 나이에 월드컵 사령탑이 됐다. 더 경험을 쌓고 월드컵에 나갔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본다”는 말로 역시 ‘경험’에 대한 미련을 이야기했다.
김호 감독은 1944년생이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에 들어섰을 때지만, 그래도 어렸다고 했다. 김호 감독은 “월드컵은 책에 없는 것들을 요구하더라”며 직접 경험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김정남, 이회택, 김호라는 인물은 축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대단했던 별들의 가슴을 때렸던 '건강한 후회'가 지금처럼 훌쩍 큰 대한민국 축구의 오늘을 만들었다.
홍명보 감독은 “선배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을 것"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단순한 립 서비스는 아니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출전이 있었기에 지금의 8회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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