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팽목항 한쪽 대한적십자사 무료 급식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열심히 믹서기를 돌리며 바나나 두유를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흰 쌀밥과 된장국, 콩나물 무침, 참치김치볶음, 멸치볶음으로 차려진 단출한 점심 밥상이지만 이마저도 물리고 마는 어머니들을 위한 대용식이다.
대구에서 온 자원봉사자 김종석(43)씨는 "아직 가족을 못 찾아 남아계신 분들을 생각하면 말이 안 나온다"면서 "내일 점심은 몸에 좋은 전복죽을 끓여서 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사흘 후인 지난달 18일에 진도에 내려와 자가용에서 쪽잠을 자며 봉사활동을 하는 김씨는 "마지막 한 분이 가족 찾아서 가실 때까지 밥해 드려야죠"라고 부르튼 입으로 말했다.
실종자 가족 수백 여명이 아비규환을 이루던 팽목항.
사고 24일째가 된 지금 가족은 50여 명이 남았다. 10가족 남짓이다. 13개에 달하던 가족 대기 텐트도 반 이상이 비었다.
하루가 다르게 비어가는 항구 거리를 보며 떠나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초조함과 외로움을 감출 수 없다.
그 곁을 묵묵히 지키는 건 자원봉사자들이다.
대부분 온종일 서서 일하는 통에 소염진통제, 피로 해소제, 파스를 얻으러 대한약사회 봉사 천막을 드나들기 일쑤지만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떠날 수가 없다.
현재 항구에서 밥 차 등을 운영하는 자원봉사단체들의 천막이나 트럭은 20여 개, 봉사자들은 360여 명에 이른다.
자원봉사자 안내소 관계자는 "밤새 자식들 소식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심경을 생각해 밤에도 불을 켜두고 천막을 지키는 봉사자들이 많다"면서 "지금도 새로운 봉사자들이 계속 찾아온다"고 말했다.
드럼 세탁기가 딸린 '이동 빨래방' 트럭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족들의 온갖 빨래를 도맡는 사회복지사 정진욱(39)씨는 휴일이었던 지난 5일 팽목항에 왔다.
인근 마을 회관에서 잠을 자며 출·퇴근하는 정씨는 "전에는 빨랫거리가 많았는데 가족들이 떠나면서 양이 점점 줄고 있다"면서 "몸이 힘든 것보다도 남은 분들 모두 빨리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미용사 김은정(43·여)씨는 사고 사흘째인 18일 안타까운 마음에 해남에서 진도까지 찾아왔다가 이·미용 봉사를 하려고 해남군미용협회 한마음회 회원들과 이번에 다시 왔다.
김씨는 "이달 초만 해도 '이발을 하면 아이를 찾는다'는 소문을 듣고 아버님들이 많이 오셨다더라"면서 "지금은 많이 한산해졌지만 그래도 오는 분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기약 없이 돌아가며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는 아니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실종자 가족들의 뒤를 돕는 이들도 있다.
마대자루와 세척제, 쓰레기봉투를 들고 온 종일 팽목항 곳곳의 화장실과 샤워실을 청소하는 임시 근로자들이다.
영농철을 맞아 일손이 달리는 농가에 가면 더 편한 환경에서 더 비싼 일당을 받고 일할 수 있지만, 실종자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돕고자 팽목항 행을 자청했다.
사실 함께 일하러 왔다가 생각보다 힘들어서 돌아간 사람들이 많아 절반만 남았다.
근로자 김모(68·여)씨는 "처음에는 엄마들이 정신이 없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을 못 챙기다가 요새는 '청소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도 한다"면서 "그래도 누군가는 와서 해야 하는 거니까 일해줄 수 있을 때까지 와서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편 지난 8일 오후까지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는 자원봉사자 2만2천549명(누계)이 거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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