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도 신호기 고장… “파란불 켜져” 열차 자동제어장치도 먹통 ‘판박이’ 세월호 참사가 20여년 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때처럼 인재(人災)로 드러나 충격을 준 가운데 지난 2일 발생한 서울 상왕십리역 지하철 추돌사고도 20년 전 판박이 같은 사고의 ‘재연’으로 확인됐다.
1994년 4월 22일 서울 영등포역에서 화물열차가 역 안에 있던 새마을호 열차를 추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철도청(현 코레일)은 이 사고가 신호장치 고장으로 일어났다고 밝혔다.
철도청에 따르면 사고 전날 역 구내의 신호기 증설공사를 마친 뒤 신호를 잘못 연결해 유도신호장치가 오작동하면서 정거를 명령하는 빨간불이 켜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새마을호 열차가 역 안에 있는데도 뒤따라 진입하던 화물열차가 파란색 진행신호를 받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이번 상왕십리역 지하철 추돌사고와 흡사한 상황이다.
사고 열차의 기관사 김모씨는 언론에 “노량진역을 떠나 영등포역에 진입하는 5개 신호등이 모두 ‘진행’을 알리는 파란불이었다”며 “시속 76㎞로 달리다 곡선구간이 끝나는 지점에서 전방 350m에 열차가 있는 것을 보고 급제동했으나 제동거리가 577m여서 추돌을 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앞 차와의 거리가 일정거리 이하로 줄어들 경우 후속열차의 진행을 자동으로 제어하도록 돼 있는 자동제어장치(ATS)도 사고 당시 신호장치 고장으로 잇달아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상왕십리역 사고 역시 상왕십리역의 선로 신호기 오류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앞선 열차가 정차해 있으면 신호기 3개가 ‘주의(노란불)·정지(빨간불)·정지’ 순으로 표시돼야 하는데, 사고 당시 ‘진행(파란불)·진행·정지’ 순으로 나타난 것이다. ‘정지’나 ‘주의’일 때 작동하는 ATS도 작동하지 않았다. 기관사가 마지막 ‘정지’ 신호를 보고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을 때는 제동 거리(200m 이상)가 확보되지 않은 128m였다.
자칫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비교적 피해가 작아 ‘불행 중 다행’이라는 점도 같다. 20여년 전 새마을호 사고로 9명이 다쳤지만 화물차보다 속도가 빠른 여객열차가 들이받았을 경우 훨씬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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