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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할 때 만났던 할머니와 닮았다는 이유로 ‘청와대 연출설’에 휘말렸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 손모씨가 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세월호 참사 당일,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 소식을 기다리던 진도실내체육관이 갑자기 술렁였다. ‘2학년2반 ○○○입니다. 선미 쪽에 있는데 유리창이 깨질까봐 무섭네요’라는 글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다. 가족들은 동요했다. 사고 초기 늑장 대응으로 시간을 허비한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하지만 이 글은 부산의 한 초등학생과 서울의 한 중학생이 허위로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허위사실과 음모론이 넘쳐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8년 광우병 사태를 시작으로 2010년 천안함 폭침을 거쳐 세월호 참사까지 시간이 지나도 유언비어는 활개를 치고 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더욱 빠르고 그럴듯하게 확대 재생산된다.

이날 경찰청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관련 악성 댓글과 유언비어 유포로 내사 중인 건수는 140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29명이 검거됐고, 2명은 구속됐다. 직업별로는 초등학생에서 전문직 직장인까지 다양하고, 연령대도 10∼50대까지 널리 퍼져 있다.
“주목받기 위해”, “장난·호기심으로”라는 한심한 이유가 대부분이다. 익명성 뒤에 숨어 죄의식이 실종된 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박창호 숭실대 교수(정보사회학)는“유포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함께 인터넷을 통한 모욕과 허위사실 유포가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공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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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권은희 의원(가운데)이 국회 정론관에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 실종자 가족 행세를 하는 선동꾼이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데 대한 사과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에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다. 남정탁 기자 |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불신은 유언비어의 자양분이 됐다. 정부의 뒷북 대응과 일부 정치인들의 선동이 가세하면서 국민들은 혼돈 속에서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실종자 가족을 가장한 전문 시위꾼이 있다는 다른 사람 글과 동영상을 그대로 퍼날랐다.

유언비어 내용이 대부분 정부를 겨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가 시신을 숨긴다’, ‘시신을 부검해보니 죽은 지 몇 분 안된 것으로 드러났다’는 식이다.
대형 사건·사고에서 일부 유언비어가 나타날 수는 있지만, 유독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음모론과 구조 당국의 무능을 지적하는 유언비어가 많은 것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사고 발생 초기 구조 여부를 번복한 것은 물론 탑승자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하며 혼란과 불안을 가중시켰다.
구조 작업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함과 비효율은 가족들로 하여금 차라리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믿게 만들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유언비어와 허위사실은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며 “대형 사건이 발생했을 때일수록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유언비어 확산을 막는 길”이라고 말했다.
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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