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 팰카·플로라 리히트만 지음/구계원 옮김/문학동네/1만5000원 |
퇴근길에 지하철을 탄다. 운 좋게도 빈자리가 있어 앉아 간다. 집까지 30분. 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접어뒀던 페이지를 펼쳐 읽기 시작한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까랑까랑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화 통화 중이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어보지만 중간중간 끼어드는 여성의 목소리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통화가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결국 책을 덮으며 들릴 듯 말 듯 한마디 내뱉는다. “아 짜증나.”
모두 한 번쯤은 겪어 봤을 일이다. 그런 이 경우에 우리가 짜증을 내는 이유가 단지 통화를 큰 소리로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귀에 들리는 대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는 ‘반쪽짜리 대화’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지체계는 자신도 모르게 그 통화 내용을 이해하려 하지만 그 내용을 온전히 알 수 없어 신경이 곤두서고 결국 짜증이 나는 것이다.
책은 이처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짜증의 이유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설명해내려 한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는 인간의 비명 소리와 비슷한 주파수이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우리의 두뇌에 각인된 원시적 공포를 일깨운다고 설명되며, 스컹크의 고약한 냄새는 썩은 음식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불쾌하다.
이처럼 짜증 유발 요소는 진화과정에서 인간이 생존을 위해 피하도록 설계되어온 어떤 것을 연상시켜 강렬한 반응을 이끌어 낸다. 어찌 보면 진짜 위협과 그 위협을 흉내 내는 가짜 위협을 구별하지 못하는 본능적인 착각이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셈이다.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보면 짜증은 일종의 ‘사회적 알레르기’다. 일반적으로 감정은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생각하나 연구자들은 이를 공동체 혹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속성이라고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양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제한될 때 짜증 나지만 동양 사회에서는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거나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하는 등 개인이 집단에서 두드러지게끔 행동할 때 짜증이 유발된다는 식이 특성이 그 증거다.
저자는 이런 일상적 불쾌와 짜증에 대해 단일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하고도 재미있는 과학적 설명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나아가 인간이라는 존재의 섬세함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한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