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회사가 위장계열사인 B회사에 180억원을 지원하면 B회사는 다시 그 돈을 갑에게 대여하도록 해 갑이 금융기관에 대출금을 상환하기로 했다. 그런데 B회사는 매년 수십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갑 역시 당시 A그룹 계열사를 위한 보증채무만 잔뜩 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B회사나 실질적으로 돈을 대출 받아 사용한 갑 모두 180억원이나 되는 대여금을 변제할 능력은 없었으므로 A회사가 B회사에 빌려준 대여금을 회수할 수 없다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A회사는 충분한 담보를 제공받는 등 채권 확보를 위한 조치 없이 B회사에 3회에 걸쳐 180억원을 대여했고, B회사 역시 아무런 채권 확보 대책 없이 갑에게 180억원을 대여했다. 갑은 그 자금으로 금융기관 채무를 변제했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 |
사실 우리나라에서 계열사를 여럿 가진 회장치고 차명재산이 없는 경우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최근 대규모 인명참사를 낸 모 해운회사 실질소유자의 차명재산을 찾기 위해 국세청, 검찰, 금융감독원 등의 국가기관이 직접 팔을 걷고 나섰다. 당연히 칼을 빼든 이상 총력을 기울이겠지만 차명재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심증을 입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십수년 전 이미 차명으로 재산을 불려왔기 때문에 상당한 증거가 소멸됐을 것이다.
계열사를 여럿 가진 회장이라면 누구나 회사 돈을 마치 내 돈처럼 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힐 수 있다. 갑과 같이 계열사를 이용해 편법을 쓰거나 회사나 임직원의 명의를 이용해 차명재산을 가지고 싶은 본능이 항상 꿈틀거린다. 그래서 법률행위는 차명으로 하면서 실질적인 소득은 회장에게 귀속되는 형태로 귀결된다. 결국 횡령이나 배임, 조세포탈 죄로 처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궁극적으로 차명재산을 환수하기 위해서는 계열사나 임직원 명의로 한 법률행위가 가장행위였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무척 힘든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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