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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안타까운 이름, 부끄러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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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1 20:59:15 수정 : 2014-04-21 2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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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한 선장’ 이준석, ‘이준석’은 세월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타까운 희생자들… 그들이 우리의 빛이다
슬픔의 눈물이 강을 이룬다. 분노는 산을 이룬다. 진도 찬 바다에 버려진 어린 생명들. 가장 먼저 배를 빠져나온 선장에게 물었다. “왜 먼저 나왔느냐”고. 답이 없다. “왜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느냐”고 또 물었다. “내렸다”고 했다. 수갑을 찬 세월호 선장 이준석이 한 말이다.

생명의 불이 꺼져갈 아이 이름을 부르는 부모는 새까맣게 타버린 가슴으로 애탄 원망을 한다. “탈출하라는 한마디만 해주지, 왜 그랬느냐”고. 어디 그들뿐인가. 온 나라의 부모들은 똑같은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오전 9시6분부터 37분까지 31분간 세월호와 진도교통관제센터(VTS) 사이에는 긴박한 교신이 오갔다. 달려온 상선 두라 에이스가 “바로 앞에 있다”고 알려 오고, 진도관제센터는 “승객들에게 구명동의를 착용하도록 방송하라”고 한다. 돌아온 답은 “방송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5분 뒤 9시28분 선실에는 “위험하니 움직이지 말라. 선실이 더 안전하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도대체 이 방송은 뭔가. 탈출 명령은 내리지 않고 엉뚱한 말만 한 세월호. 얼마나 답답했던지 진도관제센터에서는 9시24분 “라이프링이라도 입히고 띄우라, 빨리!”라고 외친다.

강호원 논설실장
‘절체절명의 31분’은 그렇게 흘러버렸다. 그새 배는 60도나 기울었다. 교신한 사람은 선장이 아니었다. 항해사였다.

선장은 어디로 갔을까. 알 수 없다. 교신 때 이미 탈출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오른 구명정은 46척 중 유일하게 펼쳐진 바로 그 구명정이었다. 9시50분 해경에 구조돼 진도 팽목항에 내렸다. 처음 땅을 밟은 구조자다. 선장의 옷은 물에 젖지도 않았다.

10시15분 “침몰이 임박했으니 탈출하라”는 다급한 마지막 안내방송이 나왔다고 한다. 누가 했을까. 숨진 22살의 어린 여승무원 박지영씨. 단원고 학생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며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야. 너희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가”라는 말을 남긴 승무원이다. 10시31분 침몰. 얼마나 동분서주했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떨어지지 않는 선장의 지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박씨의 마지막 외침이었을까.

단원고의 어린 학생들. “엄마, 말 못 할까봐 미리 보내놓는다. 사랑해.” “아빠, 지금 배가 침몰하고 있어요. 죽을 것 같아 무서워.” 마지막 문자메시지에는 절박하고 애절한 심정이 묻어난다. 안내에 따라 자꾸만 기우는 배 선실에 쪼그리고 앉아 선반 틀에 몸을 의지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질서를 지키자. 우왕좌왕하면 모두가 죽는다.’ 그들은 분명 이런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기다렸다. 하지만 탈출 지시는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배신한 선장 이준석. 구조자 명단에는 ‘일반인’이라고 적었다. 30년 넘게 바다 생활을 했다고 했는가. 그에게 붙은 ‘선장’ 두 글자는 떼야 한다. 부끄러운 이름 이준석일 뿐이다.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그 말이 가증스럽다.

단원고 교감 선생님이 목숨을 끊었다. 남긴 글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제자들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 벅차다. 내 몸뚱이를 불살라 침몰지역에 뿌려 달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 제자를 구하려다 숨진 선생님들, 무서움에 떨며 질서를 지킨 어린 학생들. 교감 선생님은 살아남은 게 못내 미안했을 것 같다. 얼마나 눈물을 쏟으며 살아난 자신을 원망했을까.

빛과 어둠을 보게 된다. 희생된 선생님과 제자들, 살아남아 미안한 선생님과 제자들…. 이들에게서 빛을 본다. 타이타닉호의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 “영국인답게 행동하라.”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남긴 말이다. 세월호에는 ‘한국인답게 행동한’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모두가 안타까운 이름이다.

이준석에게서 어둠을 본다. “한국인답게 행동하라.” 그에게 이런 말이 통할까. 변명이 차마 듣기 민망하다. 부끄러운 이름 ‘이준석’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런 자들이 곳곳에서 판을 치니 어둠은 빛을 가린다.

찬 바닷속에서 엄마 아빠를 애타게 부를 어린 학생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빈다.

강호원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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