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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가 ‘곤란한 지경’을 뜻하게 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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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3-30 21:30:13 수정 : 2014-03-30 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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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14〉 사면초가의 역사학
‘초나라 노래가 가득하다’가 ‘곤란한 지경’을 뜻하게 된 까닭은
개인정보가 몇 원꼴에 팔려 범죄에 악용되는 등 그 불법유출이 스마트 시대의 걱정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은행 등의 업무를 맡은 정부기구 금융감독원의 수장이 국민들에게 사과를 했다. 그런다고 그 우려가 씻길까. 언론은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금감원’이라고들 썼다.

사면초가. ‘천하통일의 위업’을 이루고 스스로에게 휘황(輝煌)한 천제(天帝)라는 황제(皇帝) 칭호를 붙인 중국 진(秦)나라의 왕인 정(政), 곧 진시황(秦始皇) 이야기 한 골짜기 끝 무렵의 야사(野史)다. 첫 황제 칭호라고 하여 시(始) 자가 붙었고, 아예 그의 명칭이 됐다.

초나라의 노래[歌]가 주변에 가득하다는 이 말이 왜 우리 사전에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롭고 곤란한 지경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됐을까? 이미지의 차용(借用)이다. 역사의 에피소드를 빌려 흡사한 다른 상황의 키워드로 활용하는 말(언어)의 유통 방식인 것이다. 은유(隱喩)라고 교과서는 설명하기도 한다. ‘내 마음은 호수요’로 설명되는 그 개념 말이다.

진시황이 사후세계를 꿈꾸며 만든 무덤 호위군단 병마용갱의 일부분. 진시황이 무너지자 반란이 일어났고, 한나라가 서는 과정에서 ‘사면초가’와 ‘패왕별희’의 이야기가 생겨났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역사의 에피소드나 말의 뜻은 저만치서 혼자 놀고, ‘외롭고 곤란한…’이란 뜻만 남은 듯하다. 요즘 학생들의 공부 방식이다. 원래 단어와 현재 의미, 둘 사이의 거리는 먼데 이를 잇는 징검다리는 없다. 그냥 외워야 한다. ‘사면초가=곤란’이라고.

엄청난 권력, 죽음마저도 거부하고 싶어했던 진시황이 의외로 일찍 쓰러지고 권력구조에 숭숭 구멍 뚫리자 숨죽이고 있던 반란세력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중엔 병마용갱과 아방궁을 10년 안팎 단시간에 짓느라 쌓인 울분의 표출도 있었으리라. 우리 역사에 낙랑·임둔·진번·현도의 한사군(漢四郡)으로 존재감 묵직한 한나라가 등장하는 과정이다.

영웅들은 격변의 시기에 무대에 오른다. 유방과 항우의 대결이다. 아름다운 여인도 등장한다. 많은 이들이 오래 좋아할 요소들을 고루 갖췄다. 사면초가 개념의 힘이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가. 이 이야기 실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한 면은 사면초가, 다른 면은 패왕별희(覇王別姬)다.

베이징(北京)에서 생겨난 연희(演戱·연극)인 중국 경극(京劇)의 최고 레퍼토리 ‘패왕별희’가 실은 이 사면초가 관련 이야기다. 일본·구미(歐美) 등의 침략과 공산화, 홍위병과 문화혁명 등 중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펼쳐지는 패왕별희 배역 배우들이 슬픈 얘기인 영화 ‘패왕별희’도 우리에게 친근하다. 장국영(張國榮)과 공리(鞏莉)의 열연, 눈에 선하다.

사기(史記)를 바탕으로 한 얘기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拔] 기운은 세상을 덮는다[蓋]고 자부한 ‘장사’ 항우(項羽)는 진시황의 천하통일 이전에 초나라 명문가 사람이었다. 도둑 떼의 두목이었던 유방(劉邦)도 그 시기에 항우처럼 반란군 수괴(首魁)가 됐다. 세상이 항우의 몫이 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끝내 유방이 상황을 뒤집었다.

영화 ‘패왕별희’의 한 장면. 홍콩 배우 장국영(오른쪽)이 여자보다 더 예쁘게 나와 화제가 됐다. ‘초패왕’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이별을 모티브로 한 경극 ‘패왕별희’가 소재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판승부의 격전을 앞둔 밤, 유방 측의 수많은 병사들이 항우 측을 향해 초나라의 노래를 불러댔다.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름은 전쟁터의 사기(士氣)에 치명적이다. 또 ‘저렇게 많은 내 고향 사람들이 이미 적군의 손 안에 떨어졌다는 말인가’ 하는 절망감도 들었겠다. 초나라 출신이 많았던 항우 부대, 도망병이 속출했다.

그 노래 요란한데 우미인(虞美人)으로 불리던 여인 우희(虞姬)는 이 대단한 연인 항우에게 술을 권하고 칼춤을 춘 다음 그 칼로 자진(自盡)한다.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말이다. ‘산도 뽑고 세상도 덮는’ 나, 항우에게도 이런 날 오는구나 하는 그 시가 태어난 상황이다.

야사에 남은 이야기의 재구성이겠다. 결사항전 끝, 항우도 쓰러졌다. 유방의 승전담(勝戰談)이 이어진다. 이 대목, 한나라의 시발점이다.

잘나갈 때 항우는 자신을 으뜸 패(覇) 자 쓴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불렀다. 그 패왕과 우희의 이별(離別) 장면이 패왕별희다. 요란한 분장, 독특한 억양의 노래로 잘 알려진 경극은 중국 관광의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항목.

정사(正史)라고도 하는 역사는 항우와 우희의 이런 슬픔까지 기록하지는 않는다. 몇 줄 역사책의 기록이 책 몇 권 분량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이야기가 된다. 단, 야사(野史)의 도움과 싱싱한 상상력이 이 과정에 필요하다. 우리 ‘삼국사기’와 야사 성격의 ‘삼국유사’도 발상(發想)의 실마리가 다른 만큼 이야기의 전개와 뒷맛이 다르다. 의의(意義)도 다를 터다.

나라 이름 초(楚) 글자는 모형(牡荊), 즉 가시나무나 회초리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괴로움과 어려움을 아울러 이르는 고초(苦楚)의 초는 초나라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초나라의 뜻으로 쓰이는 사면초가의 ‘초’ 또한 결코 기쁜 노래나 즐거운 상황을 만드는 데 활용되지는 않는다. 현대의 한국에서 ‘사면초가’가 흔히 쓰이는 이유를 다시 생각한다. 무겁게.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장 ceo@citinature.com

■사족(蛇足)

차동궤(車同軌) 서동문(書同文). 마차 양쪽 바퀴 사이의 거리를 통일한 것처럼 글자도 같도록 했다. 진시황이 ‘특별 보좌관’ 이사(李斯)를 시켜 이룬 업적 중 의미 오똑한 정책들이다.

좌우 바퀴 사이의 거리는 요즘 말 윤간 거리, 즉 윤거(輪距·tread)다. 윤거를 갖게 했다는 것은 길[도(道)]을 통일했다는 얘기다. 궤도(軌道)에 쓰이는 ‘궤’도 길의 뜻이다. 자[척(尺)], 저울 등의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한 것과 맥이 같다. 결과적으로 세금 거두기에 편한 방식으로 사회 구조, 이른바 ‘인프라’를 바꾼 것이다.

분서갱유(焚書坑儒), 책을 불태우고 학자를 파묻었다는 얘기는 통치에 적당하도록 지배 이데올로기를 통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공자님 말씀’도 그 책들을 벽 속에 숨기지 않았던들 지금 이만큼 남지 못했을 터다.

석고(石鼓·위 사진)와 그 위에 새겨진 소전체 문자들의 탁본, 석고문이라고도 한다. 석고는 돌로 만든 북 모양 기념물을 뜻한다.
이 부분[書同文] 중 문자학에서 중요한 개념은 대륙 곳곳의 여러 서체(글자의 형태)를 한 가지로 가지런히 다듬은 것이다. 소전체(小篆體)가 그것이다. 다듬기 전의 여러 서체들을 뭉뚱그려 대전체(大篆體))라고 한다.

크게 갑골문, 금문(金文), 소전, 해서(楷書)로 이어지는 한자 꼴의 역사에서 중요한 터전을 진시황이 이룬 것이다. 해서는 현대 한국이나 대만 등지에서 쓰이는 표준 글자체다. 꼬불꼬불 초서(草書)와 행서(行書)는 글자체이기도 하지만, 쓰는 이의 기호(嗜好)와 예술성의 표현이기도하다. 현대 중국이 채택한 간체자는 일부 글자의 획수를 줄인 것이다. 소전체는 ‘고졸(古拙)하다’라고 표현하는, 덜 다듬어진 예스러운 멋이 일품이다. 요즘 사람들 알거나 말거나, 서예가들이 이 글씨체를 즐겨 쓰는 이유겠다. 또 하나 소전체의 의의는, 해서체보다 본디에 더 가까운, 그래서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문자가 주는 철학적 통찰의 즐거움이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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