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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지음/김서현 옮김/황금가지/2만8000원 |
“내가 쓰기는 힘들지 않을까. 추리소설 쓰기가 보통 어려워야지.…안 될걸.”
추리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애거사 크리스티가 언니 매지로부터 들은 말이다. 꼬맹이였던 자신을 셜록 홈스의 세계로 이끈 언니의 말이었기에 기가 죽을 만도 하지만 “꼭 쓸 거야”라고 단호하게 맞섰다. 103개 언어로 번역되어, 40억 부가 넘게 팔린 책을 쓴 ‘추리소설 여왕’의 탄생은 이렇게 “씨가 뿌려졌다.”
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부상병을 돌보는 간호사로 일하던 중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을 구상했다. 홈스, 아르센 뤼팽 등 책을 보며 감탄했던 탐정이 누가 있는지 꼽아 보았다. 홈스는 “감히 경쟁할 엄두도 낼 수 없었고”, 뤼팽은 “탐정인가, 도둑인가, 어쨌든 내 타입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탐정으로 그린 적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게 중요했다. 그때 “자기들끼리 알아서 살아가게 내버려 두기를 원하던” 이웃의 벨기에 난민들을 떠올렸다. “‘나의 탐정이 벨기에 사람이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작은 회색 뇌세포’가 있는 사람. 나는 그 멋진 표현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 중 한 명인 ‘에르퀼 푸아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오리엔트 특급 살인’ 등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고 감탄했던 독자라면 그녀의 자서전에서 이런 내용들에 먼저 눈이 갈게 분명하다. 작품 속 캐릭터의 모델, 푸아로나 미스 마플의 탄생 배경이 곳곳에 언급되어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수도 있겠으나 ‘창조주’ 본인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특별한 재미다. “눌변이야 평생 계속되었지만 아마도 이 때문에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와 같은 고백들도 흥미롭다. 책은 60세이던 1950년부터 15년에 걸쳐 썼고, 1977년에 독자들과 처음 만났다. 국내에서는 처음 출간됐다.
추리소설에 관심이 없다면, 특히 애거사 크리스티를 모른다면 지루할 수 있다. 유년시절부터 시작해 가족, 친구, 여행, 연애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길게 이어진다. 하지만, 대가의 글은 역시 읽는 재미가 가득하다. 책읽기는 유쾌하고, 자연스럽다. 1900년대 유럽 상류층 사람들의 삶에 대한 섬세한 묘사나, 세계 대전 시절의 영국 여성들의 삶 등 흥미진진한 얘기들도 가득하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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