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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바다와 초록빛 밭…봄을 머금다

입력 : 2014-03-13 21:07:56 수정 : 2014-03-13 21: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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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다도해 풍경… 고흥 거금도 서울에서 출발한 지 6시간쯤 지났을까. 거금도에 발을 디딘다. 남해 바다에 접한 고흥반도에서도 한참을 더 내려가 다리를 두 번 건너야 당도하는 섬이다. 찬바람이 아직 불뚝불뚝 심술을 부리는 이즈음, 남해 바다의 섬은 유난히 반갑다. 훌쩍 떨어진 제주섬을 빼면 지금 우리 땅에서 가장 힘있게 봄기운이 넘실대는 곳이 바로 남해의 섬들이다.

전남 고흥군의 거금도는 소록대교와 소록도를 거쳐 다시 거금대교를 딛고 들어가게 된다. 거금도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머무는 것은 이 다리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외관부터 여간 수려한 게 아니다. 높이 168m의 주탑 두 개가 케이블로 상판을 받치고 있다. 총 연장 6.67㎞, 육상 구간을 빼면 바다를 건너는 교각 구간은 2㎞ 남짓 된다.

이 다리의 상판은 두 개로 되어 있는데, 차량들은 위층의 도로를 지나고 아래층은 보행자와 자전거가 다닌다. 이 같은 형태로 보행자 전용도로를 따로 설치한 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거금대교가 유일하다. 거금대교 아래층을 활보하는 맛은 자동차도로 양 옆에 놓인 좁은 보도를 걷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양쪽 바다가 동시에 눈에 들어오니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다. 거금도 초입에서 자전거도 빌릴 수 있다. 9년여 공사기간을 거쳐 2011년 12월에 완공된 이 다리는 지금 거금도의 명실상부한 랜드마크가 됐다.

거금도 적대봉 자락의 작은 절집 송광암으로 올라가는 능선에서 내려다본 다도해 풍경. 거금도와 거금대교, 고흥반도의 남쪽 자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2011년 12월 이 다리가 연결되며 숱한 비경을 지닌 거금도 여행이 한결 수월해졌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금산면인 거금도에서 ‘박치기왕’ 김일(1929∼2006) 얘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거금도는 1960∼70년대 국민적 영웅이었던 프로레슬러 김일의 고향이다. 금산면사무소를 지나면 바로 김일 기념관과 체육관이 있고, 그 앞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당시 김일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뭍에도 호롱불을 켜는 곳이 많았던 1967년 이 섬에 일찌감치 전기가 들어온 것도 그 덕택이라는 게 마을 주민들 얘기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세계챔피언에 오른 그를 불러 “임자의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고향 사람들이 TV로 프로레슬링 경기를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해서, 이 섬에 전기 시설을 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거금도 여행은 섬을 한 바퀴 도는 해안도로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길에서 만나는 바다 풍경에는 ‘금산 해안경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예로부터 고흥 최고의 절경 중 하나로 꼽혔다. 쪽빛 바다와 그 위에 촘촘히 박힌 수많은 섬들이 빚어내는 정취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보통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게 되는 이 해안도로의 첫 번째 전망 포인트는 옥룡마을 버스정류장 부근 언덕이다. 완도 방면으로 겹겹이 싸인 수많은 섬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오천항도 걸음을 멈춰야 하는 곳이다. 27번 국도의 종점인 포구로, 어촌마을과 그 앞에 떠 있는 섬들과 조각배들이 빚어내는 정취가 더없이 푸근하다. 오천항 초입에는 ‘공룡알 해변’이 있다. 수박만 한 크기의 갯돌들이 뒹구는 해변이다. 흔히 둥근 갯돌을 ‘몽돌’이라고 부르는데, 거금도 사람들은 이곳 몽돌이 유난히 크다고 해서 공룡알이라고 부른다. 공룡알 해변 옆에는 보통 크기의 갯돌로 이뤄진 ‘몽돌해변’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외지인들이 몽돌을 자꾸 집어간다며 잘 소개하지 않는다.

오천항 초입의 공룡알 해변.
오천항을 지나자마자 도로 옆 언덕에 조성된 ‘소원동산’도 빼놓을 수 없다. 작은 등대와 고래섬·코끼리섬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섬과 섬 사이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만날 수 있는 소원동산은 일출명소이기도 하다.

일주도로가 아닌,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도 다도해의 빼어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 섬 중앙에 솟은 적대봉(592m)의 어깨쯤에 자리한 파성재를 넘어가다 보면 산 아래로 바다와 섬, 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절정의 순간은 파성재에서 작은 절집인 송광암으로 오르는 능선에서 맛보게 된다. 쪽빛 바다 위에 두둥실 떠 있는 거금도와 거금대교, 고흥반도의 남쪽 해안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이즈음 거금도는 싱그러운 초록의 기운이 넘쳐난다. 섬 곳곳 바다가 보이는 구릉의 밭마다 심어진 양파와 마늘의 잎이 진초록빛으로 빛난다.

겨울에도 푸근한 날이 많은 고흥은 전국에서 봄 양파가 가장 일찍 출하되는 고장 중 하나다. 양파밭 옆 매화나무도 꽃을 활짝 피웠다. 봄 햇살에 은빛 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와 차가운 겨울을 이겨낸 초록의 양파밭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더없이 따스하다.

고흥=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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