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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돌아갈 곳 없는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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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3-12 22:16:47 수정 : 2014-03-12 22: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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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준비생 A. 얼마 전 1차 시험을 치렀다. 1차 시험만 벌써 네 번째다. 5년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포기하겠다고 다짐했건만…. 올해도 어김없이 시험장을 찾았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예상 합격점수를 보면 이번에도 1차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 같다. 그간 함께 공부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시험 준비를 접고 로스쿨에 진학했다. 하지만 A에겐 그 길을 감당할 만한 돈과 시간이 없다. 시험 볼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재도전’과 ‘포기’.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실패는 청춘의 특권’이라지만, 남은 건 군 입대 문제와 엉망진창인 학점뿐이다.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생 B. 올해부터 시험이 상대평가로 바뀐 탓에 합격 여부를 가늠할 수가 없다. 수험생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예상 합격점수에 관한 온갖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그의 점수는 합격과 불합격 사이를 넘나든다. 2차 시험을 준비해야 할지 아니면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새 학기를 앞두고 복학 신청도 섣불리 할 수 없었다. 요즘 그가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는 것뿐이다.

권이선 사회부 기자
지난 주말 서울 종로 젊음의 거리에서 A와 B를 만났다. 스무 살 갓 넘은 대학 신입생 때 알고 지내던 그들이 어느덧 서른 줄 가까운 나이가 됐다. A와 B는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 뜨거운 사랑도, 유럽 배낭여행도 하고 싶었을 테지만, 이른 새벽 눈 뜨면 도서관으로 향했고 새벽이 올 때쯤에야 비좁은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꿈을 위해, 가족을 위해 참 열심히 살았다.

야속하게도 행복은 노력 순이 아니라 성적 순이었다. 두 사람 모두 2차 합격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1차 시험부터 치르기를 수년간 반복하다 보니 시험 판도도 달라져 있었다. 1년 학비가 2000만원에 육박하는 로스쿨이 사법시험을 대체하게 됐다. 뽑는 인원이 대폭 줄어든 바람에 시험에 합격할 확률은 바늘 구멍만큼 줄었다. 올해 경쟁률은 37.13대 1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남은 시험 기회도 2번뿐이다. 공인회계사 시험은 1차 시험을 몇 달 앞두고 갑작스레 상대평가로 바뀌어 수험생들의 혼란만 커졌다. 지난해에 이어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고득점을 받고도 다시 1년을 투자해야 하는 수험생도 수두룩해 보인다.

A와 B는 앞으로의 계획을 고심 중이다. 내세울 만한 공인 영어 성적도 없고 학점도 낮아 섣불리 취업시장에 뛰어들기는 어렵다. 법무행정직, 세무직 등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지만 ‘공시생’이 넘쳐나는 게 현실이다. 실패한 청춘이 돌아갈 곳은 마땅치 않다.

러시아 소설가 니콜라이 고골리는 ‘죽은 혼’에서 “청춘은 미래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 아니면 도’인 요즘 청춘들에게 도전은 도박이다. 미래가 없는 청춘은 행복하지 않다.

권이선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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