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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바위 앞에 멈춰선 니체 “영원회귀 사상이 내게로 왔다”

입력 : 2014-02-28 20:19:32 수정 : 2014-02-28 20: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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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영감 얻은 철학자 니체
머무는 곳에 민감, 평생을 옮겨다녀
데이비드 패럴 크렐·도널드 L 베이츠 지음/박우정 옮김/글항아리/2만8000원
좋은 유럽인 니체: 니체가 살고 숨쉬고 느낀 유럽을 거닐다/데이비드 패럴 크렐·도널드 L 베이츠 지음/박우정 옮김/글항아리/2만8000원


“그날 나는 실바플라나 호수 근처의 숲을 산책하다가 주를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옆에서 발을 멈추었다. 그곳에서 이 사상이 내게로 왔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영원회귀’ 사상이 떠오른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영원회귀 사상은 그의 걸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기본 개념이다. 사실 이 사상은 니체가 갑자기 얻은 영감이 아니다. 오랜 시간 머릿속에서 틀을 갖췄다. 그럼에도 니체는 저서 ‘이 사람을 보라’에서 “1881년 8월에 떠올랐다”고 못박는다. 그는 저서 ‘아침놀’에 대해서도 “이 책의 거의 모든 문장은 내가 홀로 바다와 친밀하게 대화를 나눴던 제노바 근방의 어지러운 바위 틈에서 부화한 생각들”이라고 설명한다.

니체는 머무는 곳에 민감한 철학자였다. 그는 사는 곳을 잘못 선택하면 천재도 둔재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강한 내면, 심지어 영웅적인 내면을 낙담시키는 데는 독일의 기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신랄하게 말한다. 그에 따르면 천재에게 필요한 조건은 건조하고 맑은 공기다. 그는 오랜 경험으로 “토리노에서 밀라노로 가는 아주 짧은 여행에서도 습도의 변화로 인한 생리학적 영향을 계산”할 수 있게 됐다.

니체는 평생을 옮겨다녔다. 목사가 되기를 종용한 어머니 아래서 자란 소년은 유럽 학생들을 가르치는 문헌학자를 거쳐 위대한 사상가로 발전했다. 니체는 1844년 독일 작센주 작은 마을 뢰켄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동생이 숨지자 나움부르크로 이사했다. 그는 본·라이프치히 대학을 거쳐 24살에 스위스 바젤대학의 문헌학 교수로 임명됐다. 이곳에서 10년을 지냈다. 그는 이 시절에 대해 “비범한 힘을 쓸모없이 잘못 사용했다”며 어리석어했다. 이때 니체는 자신이 숭배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 부부를 종종 방문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글항아리 제공
생의 마지막 10년간은 방랑자 같았다. 건강이 나빠질 기미가 보이면 한 집필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짐을 꾸렸다. 주로 여름에는 스위스 엥가딘의 질스마리아, 겨울에는 이탈리아 제노바와 프랑스 니스에서 지냈다. ‘차라투스트라…’의 영감을 준 실바플라나 호수는 질스마리아에 있다. 니체가 간절히 찾기 원한 장소는 “그늘이 많고 하늘이 항상 맑으며 아침부터 밤까지 바다에서 꾸준히 바람이 불어오고 날씨가 변덕스럽지 않은 시골”이었다.

니체가 쾌적한 환경을 갈망한 건 당연한 일이다. 니체의 아버지는 뇌의 액화괴사로 3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났다. 니체 역시 30대부터 편두통과 시력 저하, 위장장애에 시달렸다. 매독으로 인한 정신질환과 신체마비는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서서히 쇠락한 그의 마지막 10년은 쓸쓸하다. 1889년 이탈리아 토리노 광장에서 정신을 잃은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곧 가족의 간호를 받는다. 

스위스 고지 엥가딘 실바플라나 호수의 남쪽 호숫가에 있는 쪼개진 바위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영원회귀 사상을 떠올린 장소다.
글항아리 제공
이 책은 니체의 전기이지만 형식이 특이하다. 니체의 삶을 그가 머문 장소를 중심으로 씨줄과 날줄 엮듯이 펼쳐낸다. 사진 자료가 풍부하다. 니체의 2층 짜리 생가부터 집필 장소인 알프스 계곡과 지중해, 마지막 숨을 거둔 집까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단순 화보집은 아니다. 니체의 사상 발전과 삶의 풍경을 충실히 재구성했다. 각종 저서, 가족·지인과 나눈 내밀한 편지, 지인들의 일기와 주변인의 기억을 지표 삼아 니체의 행적을 따라간다. 니체의 아름다운 문장에 낙엽송과 바다 공기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저자들은 “(책에 실린) 사진들은 글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말해준다”고 밝힌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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