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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의 한 주의 시] 아득한 세월 추구해온 이데아의 꿈

입력 : 2014-02-27 22:04:18 수정 : 2014-02-27 2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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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가 되어 공룡을 찾다 / 신규호

바닷가 바위 속에 숨겨놓은 알 몇 개의 흔적만 들켰구나. 일억 년 전 내가 술래였을 때, 찾지 못한 어미 공룡,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가 알만 몇 개 낳고 사라졌구나. 내가 술래 되어 ‘꼭꼭 숨어라, 발가락이 보인다’를 외쳐온 일억 년의 세월이, 바다가 보이는 코리아의 거대한 바위 속에 알 몇 개만 낳아 놓고 어디로 가 무슨 꿈을 꾸며 숨어 있는가. 2014년 햇살 따뜻한 봄날, 노랗게 핀 개나리가 그리워 찾아 헤매던 날, 일억 년은 화석이 된 채 깨어진 알 몇 개의 흔적으로만 남았구나. 사라진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여, 다시 알에서 깨어나와 술래에게 일억 년 전 네 모습을 보여 다오. 너에게 일억 년은 찾지 못할 아득한 세월이지만, 나에게 일억 년은 지금 여기 소용돌이치고 있는 ‘한 순간’에 불과하구나. 숨어 있는 어미 공룡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여

그림=화가 박종성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류는 항상 무언가를 찾아 헤매어 왔을 것이다. 눈앞의 현실 너머 이상향을 꿈꾸고, 실현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완벽한 이데아(Idea)를 추구해왔다. 마음속에 언제나 커다란 이상을 품고 이것 아닌 저것을 꿈꾸고, 지금 아닌 다른 시간과 공간을, 불완전한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꿈꾸고 갈망하는 것이 인류이다. 그가 처해 있는 세계가 누추하고 남루하면 그럴수록 그 꿈은 더욱 커지고 깊어지고 간절해져, 나날이 발전하는 인류문화와 문명을 형성해왔다. 눈앞에 형상으로 실현되는 도시와 문명과 기계와 편리함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더러 어떤 꿈은 종교를 낳고, 어떤 꿈은 철학을 낳고, 예술을 낳고 문학을 낳았다.

지금 이 시의 화자는 코리아라는 작은 나라의 바닷가에서 발견된 공룡알의 화석을 보며, 아득한 그 시간 동안 찾지 못한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를 찾으려고 일억 년 동안 헤매는 술래가 되었다. 그가 일억 년 동안 찾으려고 애써 온 것은 무엇일까. ‘일억 년’은 계량할 수 없는 ‘아득한 세월’이기도 하고 소용돌이치고 있는 ‘한 순간’에 불과하기도 하다. 인간의 생각에 따라 바뀌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 속에 우리는 전혀 체험해 보지 못한 먼 시공간을 순식간에 체험하기도 하고, 거대한 생명의 꿈, 실현할 수 없는 이데아의 꿈을 일생 동안 아니, 대대로 물려받아 추구하며 살아왔다. 그 꿈을 우리에게 다시 꾸게 해주는 ‘알 몇 개’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 꿈은 ‘2014년 햇살 따뜻한 봄날’을 넘어서 인류가 존속되는 한 영원히 지속되며 우리의 영혼을 남루한 현실로부터 들어올려 고양해줄 것이다.

이혜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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