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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진영 “멜로? 안 시켜주니까 못하지”

입력 : 2014-02-24 15:35:50 수정 : 2014-02-27 11: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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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에서 표독스러운 표정과 광기, 카리스마 등을 걷어내니 푸근한 아저씨 인상이 보였다. 정진영(50)은 기다림에 익숙한 배우이자 작품에 기꺼이 자신을 맞출 줄 아는 진정한 프로였다.

지난 20일 개봉한 ‘찌라시: 위험한 소문’(감독 김광식)에서 그는 증권가 사설 정보지를 제작, 유통하는 박 사장 역을 맡아 8kg이나 체중을 늘리는 투혼을 불태웠다. 굳이 살을 찌워야 하는 역할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김광식 감독과의 논의 끝에 증량을 결심했다고 한다.

기존의 진중하고 적확하고 차가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코믹하면서도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를 선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살을 찌우는 건 쉽더라고. 아주 쉬워. 밤에 라면 먹고 자고, 먹고 싶은 거 있을 때마다 그냥 먹어주면 되니까. 한편으로는 아주 맘이 편하더군요. 배우란 게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 직업인데, 맘껏 먹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죠. 지금은 원래 몸무게로 빼고 있는데, 제가 나이가 나이다 보니 뭐 다 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네요.(웃음)”

정진영이 ‘찌라시’에 출연하기로 맘먹은 건 꽤나 오래 전 일이다. 제작사인 영화사 수박과는 ‘이태원 살인사건’(2009)을 찍을 당시 인연을 맺었고, 일찌감치 출연 약속을 해놓은 터였다. 한 마디로 정진영은 영화의 시작과 끝(개봉)을 모두 지켜본 셈이다.

‘찌라시’는 일본어로 전단지·광고지를 뜻하는 치라시(散らし)에서 파생된 말로, 증권가 사설 정보지를 뜻한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인 그는 표준어도 아닌 이 영화의 제목을 어떻게 생각할까.

“속어이기는 한데, 대신할 만한 마땅한 표현이 없었나 봐요. 찌라시는 어감이 독특하고 강렬해서 다들 한 번 들으면 바로 기억하는 제목인 것 같아요. 때로는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들이 머릿속에 오래 남기도 하니까요.”

배우란 직업의 특성상 ‘찌라시’는 매우 민감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 스스로가 찌라시의 주인공이 된 적은 없었지만, 충분히 동료들의 고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불편한 것보다는 사실 확인도 안 된 이야기를 퍼뜨리고 전달하는 사람들이 괘씸했다고 했다.

“저와는 멀리 있는 세계의 이야기였으니 불편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어요. 그냥 재미있는 오락영화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찍다 보니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나 불편한 구석들도 다루더군요. 정부와 악덕 기업 간 부당거래 같은 거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려고 영화를 만든 건 아니거든요. 영화란 장르의 특성상 그 안에 세상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담긴 것뿐이죠. 보시는 분들이 그런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요.”

‘찌라시’는 증권가 루머로 인해 파멸한 여배우의 매니저 우곤(김강우 분)이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범죄 액션 영화. 정진영이 분한 박 사장은 딱한 처지에 놓인 우곤을 알게 모르게 도우며 보이지 않은 악의 근원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영화에 아주 짧게 설명돼 있지만, 박 사장 역시 O&C란 대기업에게 당해 다리 한 쪽을 잃은 인물이에요. 겉으로는 밝고 호탕해 보여도 속으로는 아픔을 간직한 인물이란 거죠. 그런 그가 우곤을 돕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몰라요. 그게 아무리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 할지라도….”

그는 영화에서 우곤을 제외하면 박 사장, 백문(고창석 분), 차성주(박성웅 분) 등 주변 인물들은 어쩌면 판타지 속 인물과도 같다고 말했다. 배우 입장에서는 캐릭터가 현실에 뿌리 박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디테일한 표현에 더 힘써야 했다. 그는 김광식 감독이 수많은 취재와 조사 끝에 허구의 이야기를 현실처럼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귀띔했다.

“어쩔 수 없어요. 상업영화는 관객들에게 많이 보이려고 만든거니까. 저도 관객들이 많이 들면 무조건 좋아요. 물론 만들어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되는 영화의 범주는 따로 있죠. ‘찌라시’ 같은 오락영화는 관객들과 많이 만났을 때 비로소 꽃을 피웠다고 생각해요. 저야 어찌됐건 과정에만 관여하는 사람이니까, 감독님과 함께 그저 최고로 재미있게 찍자고만 했어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약 4년간 진행했던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영향이 아직도 그에게 미치고 있는 걸까. 정진영은 그게 벌써 8년 전 이야기인데 지금도 그를 진지하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주로 남자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에 출연했는데, 저라고 왜 여자 파트너와 호흡 맞추는 부드러운 영화를 찍고 싶지 않겠어요. 그런데 멜로도 누가 불러줘야 찍는 거지. 제가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닌 거니까.(웃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찌라시’는 나름 풀어진 연기를 할 수 있었으니 만족해요. 앞으로도 제게 주어진 역할 안에서 조금씩 진화해 나가야겠죠.”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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