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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논란' 자초한 軍… 곤혹스런 '국방부'

입력 : 2014-02-23 11:07:27 수정 : 2014-02-23 14: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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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여대 RT평가 2연속 1위에 순위제 없애
김연아 빼앗긴 금메달처럼 軍'텃세' 부려서야
국방부가 군 내부의 잇따른 '성차별 논란'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하루 사이에 연달아 같은 문제가 불거지면서 머쓱한 표정만 지을 뿐 속 시원한 해명도 하지 못하고 있다. 금메달을 도둑맞은 김연아 선수가 안타까워 러시아의 '텃세'만을 욕할게 아니다. 군대가 갖고 있는, '금녀의 영역'이라는 오랜 '텃세'부터 고쳐야 할 상황인 것이다.

지난 19일 공군사관학교(공사)는 수석을 차지한 여 생도가 당연히 받는 대통령상을 차석인 남 생도에게 주려다 홍역을 치렀다. 20일에는 학군사관후보생(ROTC)들의 군사훈련 평가에서 여자대학교가 2회 연속 1위를 하자 아예 순위제를 없애버렸다는 보도로 곤궁한 처지에 놓였다.

공사는 대통령상 수상자 바꿔치기로 1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다. 졸업 성적 수석인 여생도 대신 차석인 남생도에게 대통령상을 수여하기로 한 결정이 화근이었다. 수상자 변경 이유로 공사는 여생도의 체력과 군사훈련 성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영만 교장은 수상자를 차석인 김모 생도로 바꾼 이유에 대해 국방위에서 "(수석 여생도가) 자기개발능력이 부족하고 책임감과 성실성, 리더십, 조직융화도 문제가 있다"며 "종합성적은 1등이었지만 자기개발노력,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은 차석 생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육사와 해사가 대통령상 수상 결격 사유를 예규에 분명히 못 박아 놓은 반면 공사는 기준이 아예 없다. 그나마 규정을 대라면 학기말 포상 '결격사항' 뿐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F학점을 받았거나 흡연·음주·성(性)군기 위반 등 3금제도를 위반할 경우 포상을 금하도록 되어 있다. 여 생도는 이 규정을 어겨 처벌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이 교장이 종합성적 1등인 여 생도가 자기개발 능력이 부족하고 책임감, 성실성 등에서 뒤쳐진다는 이유를 댄 것이 궁색해 보이는 이유다. 대통령상은 안 되고 국무총리상은 된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다. 여성을 차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19일 국방위에서는 이 교장의 발언을 힐난하는 지적이 여야를 막론하고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이 교장의 다소 편중된 해명이 논란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유승민 국방위원장은 "당사자의 명예를 훼손할 수도 있는 발언을 함부로 하지 말라"며 "성적은 1등을 했는데 대통령상을 못 받은 생도가 인성이 부족한가"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도 "성실하게 4년간 열심히 공부해 종합 1위를 한 여 생도가 인격적 모욕을 당한 것"이라며 "학교규정이 애매모호하게 해석됐다. 여군들한테 14년 동안 네 번이나 (대통령상을) 주니까 큰일 나겠다 하는 건가. 합리성이 없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도 "성차별이 아니라고 하려면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었다고 제시돼야 한다"며 "결격사유가 있다면 포상대상 자체에서 배제해야 한다. 대통령상엔 결격인데 총리상엔 적격이란 말은 처음 듣는다"고 꼬집었다.

여성계와 정치권의 가시 돋친 비난이 빗발치자 공사는 결국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꿔 27일 졸업식에서 당초 수석을 차지한 여 생도에게 대통령상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명확한 기준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수상자를 결정해 왔음을 자인한 셈이다.

공사는 "국회 국방위원회의 재심의 권고에 따라 20일 다시 심의한 결과 졸업 종합성적 1등 생도를 대통령상 수상자로 결정했다"며 "수상생도 선정 심의 때 성별은 고려하지 않았지만 대통령상 수상자 선정에 관련 규정의 해석과 적용이 미비했다. 관련 규정을 보완하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공사가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공사 고위간부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리 없다'는 격언이 허언은 아닌 것일까?

◇"女大 1위는 못 참아?"…ROTC 순위제 없앤 軍

학군사관후보생(ROTC) 문제도 심각하다. 여자대학교가 ROTC 군사훈련 평가에서 2회 연속 1위를 하자 군 당국이 학교별 순위를 없애고 등급제로 바꿔버렸다. 당연히 성차별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군 관계자는 지난 20일 "여대 ROTC가 하계훈련과 동계훈련에서 잇따라 종합성적 1위를 차지해 학교별 순위를 매기지 않고 등급제로 평가 방식을 바꿨다"고 밝혔다.

구체적 이유 없이 변경한 것인데 국방부는 21일 정례브리핑에서 "학교별 서열화가 주는 갈등과 위화감 같은 문제들이 있다고 판단됐기 때문에 서열화를 폐지하고 등급제로 발표하게 됐다"며 "이런 문제 때문에 작년 하반기부터 이를 개선하자고 해서 바꾼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방부의 해명에도 이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차갑기만 하다. 일부에서는 여대 ROTC가 부각되자 군 당국이 이에 부담을 느껴 학교별 순위를 폐지했다고 보고 있다. 군 내부에서도 여대 ROTC는 남성 중심의 다른 학교 ROTC에게 자극이 되는데 서열화와 위화감 조성을 이유로 순위제를 없애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국방부에 따르면 여대에 ROTC가 생기기 이전에는 문제제기 없이 각 대학들의 순위를 메겨왔다. 그러다 숙명여대에 이어 성신여대가 ROTC 군사훈련 평가에서 잇따라 1위를 차지하자 서열화를 핑계로 순위제를 폐지한 것이다.

군에 따르면 2012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진행된 하계훈련에서 숙명여대 ROTC는 109개 학군단 중 종합성적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곳에서 열린 2012∼2013년 동계훈련 때는 성신여대 ROTC 29명이 110개 학군단 중 1위에 올랐다. 특히 성신여대 학군단은 창단 1년 만에 110개 학군단 중 1위를 차지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재 여대 중에는 숙명여대와 성신여대만 ROTC를 운영하고 있다. 숙명여대는 2010년 12월, 성신여대는 2011년 12월에 각각 ROTC를 창설했다. 국방부의 설명대로라면 숙명여대가 ROTC를 창설하기 전까지는 등급제로 인한 서열화나 위화감 조성 같은 문제가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여군 규모는 지난해 6월 기준 8000여명으로 전체 간부 대비 4.6%다. 국방부는 올해부터 군종(軍宗) 병과와 육군의 포병·기갑·방공병과를 여군에 개방하기로 했다. 해병대 포병·기갑병과를 제외한 거의 모든 병과를 개방하는 것이다. 육군3사관학교도 여생도 20명을 처음으로 선발한다. 육·해·공군·해병대 대부분의 장교 양성 과정과 병과에 여군의 지원이 가능해 졌다.

하지만 밖으로는 여군에게 거의 모든 병과의 문호를 개방했다고 홍보하면서 안으로는 문고리 걸어 잠그기 급급한 군의 이중적 행태를 보는 것 같아 가 입맛이 쓰다. 남성들이 계속 1위를 했다면 대통령상 수상자를 바꾸거나 순위제를 폐지하자는 '거부할 수 없는 분'들의 '명령'이 하달됐을까 싶어서 더더욱 그렇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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