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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인 詩語, 죽음마저 아름답게…

입력 : 2014-02-13 20:32:16 수정 : 2014-02-13 20: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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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산 6년 만에 신작시집 ‘태양의 혀’ “지퍼를 내린다/ 세계가 차단된다/ 그녀는 닫힌 문안에 있다/ 하복부로 마구 흘러다니는 가을비/ 올라오는 습기가 차다// 그가 들어온다/ 복잡한 오늘을 생략하라는 듯/ 그의 등 뒤로 보이는 불빛이 흐릿하다/ 잔 속에 눈꺼풀을 담는다/ 집이 흔들리고/ 눈꺼풀이 떨리고”(‘피크닉’)

가을비 내리는 저녁, 복잡한 하루를 몰아내듯 그가 그녀 안으로 육박해 들어온다. 몸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눈꺼풀까지 경련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바야흐로 “날카로운 바람이/ 빗물이 새어 들어오고 있어도/ 우리는 한 몸이 되는 중”이다. 관능적이다. 가을비가 새어들고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 서늘하고 축축한 관능이다.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지 6년 만에 펴낸 박미산(사진) 시집 ‘태양의 혀’(서정시학)에 수록된 시편 중 하나다.

이번 시집에는 데뷔작 ‘너와집’처럼 싱싱한 관능이 여전히 넘실댄다. 더 깊어진 사유에 출렁이는 몸의 리듬이 완숙하게 스며들었다. 박미산은 “하얀 나비 떼가 날아다녔어/ 내 몸에서 눈, 녹는 소리가 들렸지/ 침대 위에 누워 있던 그도 스르르 녹아버렸어// 젖은 나의 방에서/ 증발한 그의 행적과는 무관하게/ 나는 매일 밤 명상하며 녹고 있지”라고 침대 위 ‘젖은 상상력’을 끌어들이다가 “그는 뉴욕에서/ 나는 서울에서/ 서로의 시차에 푹 젖으며 번지면서 녹는 거”라고 마무리한다.

이 시편의 제목이 ‘프라나’인데 이는 산스크리트어로는 숨, 인도 철학에서는 에너지, 혹은 기(氣)의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시집 뒤에 발문을 붙인 문학평론가 김주연은 박미산 시의 토대가 ‘기의 상상력’이라고 설파했거니와, 태양의 혀를 닮은 박미산의 ‘기’는 죽음까지 휘어잡는다.

“꽃 화장을 한 그녀가 몇 겹의 나뭇더미에 누워 있어요 그녀가 움켜쥐었던 생이 불꽃을 터뜨립니다 붉은색, 푸른색, 하얀색 화장으로 몸을 바꾸며 뒤척입니다.// (중략) …새벽 달빛이 한쪽만 남아 있던 유방을, 부러진 다리를 밟으며 울퉁불퉁 마흔네 해를 덮습니다.”(‘예숙이’)

죽은 몸을 태우는 화장(火葬)조차 시인은 붉고 푸른색으로 화장(化粧)한다. 시신의 손발톱을 깎고 흩어진 머리카락을 주워 담는 ‘조발낭’을 표제로 삼은 시편에는 “당신을 부르는/ 11월 밤바람, 요령 소리// 당신은 홍련 꽃잎 떨어지듯/ 바다로 천천히 들어간다”고 썼다. 죽음을 넘어 생의 리듬까지 그윽하게 잡아내는 이런 시편에 이르면, 박미산에 깃든 시마(詩魔)의 깊이를 짐작할 만하다.

“단순한 리듬// 구부정한 생이 왔다 갔다 한다// 탄력이 붙는다//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지는 산 벚꽃잎// 미끄러지는 봄”(‘셔틀콕의 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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