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개봉일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몽상가들’은 2005년 3월25일, ‘암전’은 2000년 2월19일, ‘황야의 무법자’는 1977년 7월30일 등 최근 개봉작과는 거리가 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영화는 모두 ‘재개봉작’이다. ‘몽상가들’은 개봉 10주년 기념으로 지난 6일 전국 14개 스크린에서 재개봉되었고, ‘암전’은 최근에 개봉한 두기봉 감독·유덕화 주연의 ‘블라인드 디텍티브’와 관련해 1개 스크린에서 재상영 중이다. ‘황야의 무법자’는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특별전으로 상영 중인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영화 6편 중 한 편이다.
지난 달 미국 판 리메이크 버전인 ‘올드 보이’(감독 스파이크 리)의 원전인 박찬욱 감독의 오리지널판 ‘올드 보이’ 역시 개봉 10주년 기념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이 작년 11월21일에 재개봉된 바 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 레터’도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지난해 11월 재개봉됐다. 영국의 워킹타이틀 제작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이 지난 12월5일 개봉된 직후, 같은 제작사·같은 감독의 전작 ‘러브 액츄얼리’도 크리스마스 에디션으로 재개봉했다. 이 밖에 ‘레옹’(감독 뤽 베송, 1994), ‘라붐’(감독 클로드 피노토, 1980), ‘화양연화’(감독 왕가위, 2000) 등도 재개봉되어 추억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다시 보는 게 흔한 일이 되버렸다.
기획전이나 회고전, 영화제 등을 통한 이벤트성 단발 상영은 늘 있어왔지만, 작년에는 유독 재개봉작들이 많았다. 극장가의 비수기 대처, 다양성 영화관의 차별화 시도, 디지털 리마스터링 기술로 향상된 영상 버전 상영 가능, 낮은 수입가, 마케팅비 절감 등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재개봉 붐은 1970년대 충무로에서도 있었다. 개봉관과 재개봉관이 구분돼 있던 당시 개봉관에서 ‘리바이벌 상영’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봉작을 올렸다. 이는 개봉관들의 쇼 공연 유치와 비슷한 이유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한국영화 제작 편수는 100편을 훌쩍 넘기고 있었으나 흥행이 되는 영화가 적었고, 규제로 인해 연간 20여 편만 수입되는 외국영화로는 상영작이 부족했기 때문에 영화관들은 과거에 흥행했던 외국영화의 재개봉에 눈을 돌렸다.
요즘처럼 리마스터링이나 재편집 버전이 상영되는 것은 아니었고, 말 그대로 이미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재수입된 것이었다. 개봉 규모와 동원 관객 수도 요즘과는 차원이 달랐다. 대부분의 영화가 10개 안팎의 서울시내 개봉관 중 1곳에서만 개봉되던 당시에 개봉관 1곳에서 재개봉되는 것은 결국 같은 규모의 개봉인 셈이었다. 요즘처럼 신작들이 5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개봉되는 추세에 소수의 스크린에서 재개봉되는 경우와는 비교가 불가한 규모라 할 수 있다.
개봉 당시와 비슷한 규모로 관객을 동원하는 재개봉 영화도 많았다. 1962년 대한극장에서 처음 개봉된 ‘벤허’(감독 윌리엄 와일러, 1959)는 1972년에도 대한극장에서 재개봉돼 46만 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이후 1973년, 1981년에도 재개봉됐다. 1962년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초원의 빛’(감독엘리아 카잔, 1961)도 1972년 허리우드극장 재개봉해 역시 21만여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그 외에 ‘노트르담의 곱추’(감독 윌리엄 디터리, 193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감독 샘 우드, 1943), ‘쿼바디스’(감독 머빈 르로이, 1951), ‘에덴의 동쪽’(감독 엘리아 카잔, 1955), ‘남태평양’(감독 조슈아 로간, 1958), ‘태양은 가득히’(감독 르네 클레망, 1960) 등 요즘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영화들이 단골 재개봉 영화들이었다.
1980년대 초까지도 지속되었던 외국영화 재개봉 붐은 영화관을 위한 붐이 아니었다. 재개봉 영화의 수입가는 저렴했고, 필름을 들여와 수입허가를 받아야 하는 실사 심사절차로 인한 비용과 위험 부담도 적어 수입사를 위한 붐이기도 했다. 또한 연간 정부에서 허가하는 20여 편의 일반 상업영화 수입쿼터가 아니라 문화영화 쿼터로 수입이 가능해 수입사와 영화관 모두가 이미 흥행이 검증된, 소위 명화들의 재개봉을 추진했던 것이다.
한국영화 중에는 개봉 당시 대박을 터뜨렸던 ‘미워도 다시 한 번’(감독 정소영, 1968)이 1972년 재개봉되었는데, 언론으로부터 새로운 영화를 제작하는 대신 손쉽게 돈을 버는 상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실 외화 재개봉에 대한 언론의 시선도 그리 곱지는 않았다. 1970년대 내내 ‘왕년의 명화’를 재탕하느라 새로운 문제작들이 외면당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기사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사실 재개봉은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영화계가 불황을 겪던 시기에 나타났던 영화계의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어차피 수입 규제로 인해 많은 외화를 볼 수 없었던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기존 히트작의 재개봉은 수입사와 영화관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TV 브라운관 앞에 자리 잡은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발걸음 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였던 것이다.
요즘처럼 DVD나 VOD 서비스를 통해서 예전 영화들을 쉽게 접할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 재개봉은 미처 보지 못한 영화나 전설의 히트작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영화관의 시설 정비가 있었다면 예전보다 향상된 사운드나 영상으로 재개봉 영화를 감상하는 건 덤도 누릴 수 있었다.
재개봉 문화는 관객의 추억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필자가 처음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인데, 이 영화가 국내에서 처음 개봉되었던 건 1969년이었다. 당시는 태어나기도 전이었으니 아마도 재개봉 영화를 본 것으로 추측된다. 만약 그 때 재개봉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스크린이 아닌 TV나 비디오 등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을 접했을 것이다.
서일대 영화방송과 외래교수
사진=1973년 8월11일자(위), 1981년 3월2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재개봉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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