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의 세력균형, 세계평화의 첫걸음
‘힘의 정치’만 역설… 모겐소 한계로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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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모겐소 지음/이호재·엄태암 옮김/김영사/각 3만원 |
지난해 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동아시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일본의 우경화 가속에 동맹국 미국도 우려를 표하는 마당이다. 2013년 하순 이어도를 포함한 중국의 방공식역구별 발표로 한·중 관계도 냉랭하다. ‘정랭경열(政冷經熱·정치는 차갑고 경제는 뜨겁다)’이라지만 한·중·일 3국의 대립은 현재진행형이다. 난사(쯔엉사·스프래틀리)군도를 둘러싼 중국·베트남·필리핀의 대립도 영토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2013년 필리핀 태풍 참사에 따른 원조 물결이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잠깐 ‘훈풍’을 일으키긴 했으나 대립 상황은 여전하다.
왜 그럴까. 신간 ‘국가 간의 정치’는 세계적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1904∼1980)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국 시카고대에 개설한 국제정치학 강의안을 정리한 것이다. 이후 저자 본인과 제자들에 의해 네 차례나 개정판이 나왔지만, 지금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명저로 꼽힌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치의 본질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왜 국가 간의 대립이 격화할 수밖에 없는지, 이를 해소할 방안은 없는지 등에 대한 답변이다.
모겐소는 인간의 권력투쟁적 특성이 국제정치의 본질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평화를 향한 인간의 다양한 시도가 원천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면 인류평화란 불가능한가”라고 반문하면서 나름의 평화 방안을 제시한다. 그가 강의를 처음 개설한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가 간의 대립과 투쟁은 여전하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감정에 불을 댕겨 전쟁 분위기로 몰아갈 위험 요인이 곳곳에 널려 있다는 게 모겐소의 결론이다. 수십년 전의 진단이지만 국가 간 대립을 보는 안목이 탁월하다.
독일 태생인 모겐소는 히틀러 치하에서 학문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망명해 정착했다. 시카고대를 국제정치학의 메카로 키운 것은 순전히 모겐소의 힘이었다. 국제정치학의 대부로 성장한 모겐소는 국가 간 대립을 ‘인간의 권력 다툼의 경합장’으로 파악하고, 현실주의적 관점을 설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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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모겐소 교수의 젊은 날의 강연 모습. 그는 “국가 간의 대립은 결국 이기적인 인간으로부터 기원한다”고 주장했다. |
이런 현실을 인정하는 사조가 2차 대전 이후 생겨났다. 과거에 사악한 것이라며 배척했던 ‘힘의 정치’ 혹은 ‘권력 정치’ 등의 개념들이 재등장한 것이다. 이런 국제정치의 철학 사조가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모겐소는 이런 정치철학 사조의 중심에 서서 ‘힘의 논리’의 국제정치를 전파한다. 덕분에 그는 전후 미국 외교정책 수립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민주주의를 보호하고 옛 소련의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미국이 무력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당당히 주장했다. 그는 “국제정치는 권력투쟁으로 특징 짓는다”고 단언한다. 국제정치가 권력투쟁의 장이 될 수밖에 없는 건 한마디로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심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모든 국가는 국력을 확장하려 노력한다. 모겐소는 “무질서한 경쟁과 대립 속에서 세계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세력균형’과 ‘국력의 건설’이 필수적”이라면서 “외교에 적극 힘써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모겐소는 또 “적절한 수준의 비밀외교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협상을 통한 능동적 외교력을 계발하고, 이를 정치에 활용하는 인간의 지혜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힘의 정치’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이 모겐소의 한계로 지적된다. 모호하게 외교력에 세계평화를 맡긴다는 논리는 어딘지 빈약해 보인다. 하지만 국익 극대화 추구와 국가 간 쟁탈 조장의 논리, 그리고 이를 권력 유지에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속성을 규명한 모겐소의 견해를 뒤엎을 만한 사유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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