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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훈 |
1990년대 음악에는 삶의 통과의례와 같은 노래가 많았다. 오래된 연인과의 이별을 노래하는 ‘7년간의 사랑’(화이트), 술기운으로 고백할 때 흥얼거리는 ‘취중진담’(김동률), 입대를 앞두고 부르는 ‘입영 열차 안에서’(김민우)·‘이등병의 편지’(김광석), 서른 살 문턱에서 노래하는 ‘서른 즈음에’(김광석) 등 삶의 전환점에서 사람들이 찾는 노래가 많았다. 오늘날 가요가 의미 없는 가사나 특정 어구를 반복하며 스타일과 스웨그(Swag·허세)를 강조하고 있다면, 1990년대에는 조금 유치했지만 사랑·이별 등 특정 주제를 진지하게 노래했다.
‘응답하라 1994’의 주된 테마인 ‘신인류의 사랑’(015B)과 ‘자유시대’(모자이크)처럼 세대 변화를 노래하는 시대 정신도 있었다. ‘신인류’와 ‘자유시대인’은 1990년대 초반 자유분방한 연애를 꿈꿨던 ‘X세대’를 의미한다. 예쁜 여자를 만나고 싶어하는 남자들의 심리를 가볍게 노래하면서도 시대 흐름을 담았다. 반면 오늘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스마트폰 세대들은 세대 철학을 담기보다는 단문 메시지를 즐겨 쓰는 습성대로 음악을 빠르게 소비하며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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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
1990년대는 슬픔의 미학이 통했던 시절이었다. 애잔·아련·애틋·처연·처절 등 슬픔의 결이 다양했고, 그러한 분위기를 타고 신승훈·이승환·이은미·박효신·양파 등 많은 솔로 가수들이 사랑받았다. 신승훈 ‘보이지 않는 사랑’, 이승환 ‘천일 동안’, 이은미 ‘어떤 그리움’, 부활 ‘사랑할수록’, 김혜림 ‘날 위한 이별’ 등 발라드 명곡들이 줄이어 탄생했다.
슬픈 댄스 음악도 많았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과 ‘빗속의 여인’, 코요태 ‘순정’, 김현정 ‘그녀와의 이별’, 영턱스클럽 ‘정’ 등 춤추면서도 슬픈 감정을 노래했다. 떠나간 애인에게 요즘 가수들은 “너 따윈 필요 없어”라고 외치지만 그때는 “기다릴게. 돌아와줘”라며 애원하곤 했다. 작곡가 주영훈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요즘 사람들은 슬픈 음악을 좋아하지 않지만 1990년대에는 그런 정서가 발라드·댄스에 모두 통했다”고 말했다.
◆귀로 듣는 1990년대, 눈으로 보는 2000년대
요즘 아이돌 음악은 퍼포먼스까지 눈으로 봐야 완성된다. 노래뿐만 아니라 외모·춤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예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실례로 SM엔터테인먼트는 노래와 무대를 함께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SMP(SM Performance)’라는 새로운 장르를 추구하며 소속 가수들을 훈련하고 있다.
섹시한 음악만 해도 엄정화 ‘초대’, 박지윤 ‘성인식’, DJ DOC ‘미녀와 야수’, 박진영 ‘엘리베이터’ 등은 무대를 보지 않아도 노래 자체가 야릇한 감정을 자극하지만, 요즘 걸그룹의 노래는 선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음악 자체는 평범한 일렉트로니카인 경우가 많다. 섹시 콘셉트를 음악이 아닌 노출과 야한 동작으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지 않으면 섹시함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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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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