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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47 소총. 사진=위키피디아 |
23일 세계 언론들은 한 무기 설계자의 죽음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바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그가 개발한 AK-47 소총은 군인, 게릴라, 테러리스트 등이 선호하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1억 정이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AK-47 소총은 러시아 창조적 천재의 상징”이라고 평가한 AK-47은 2차 세계대전의 교훈에서 탄생했다. 나치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돌격소총을 투입했는데, 연발 기능에 기관단총보다 사거리가 길어 소련군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전후 소련군은 독자적인 돌격소총을 확보하기로 결정하고 연구에 돌입해 1949년 칼라시니코프가 만든 AK-47을 제식 소총으로 도입한다.
AK-47은 명중률이 부족했지만 튼튼하고 신뢰성이 높으며 구조가 간단했다. 누구나 1시간이면 사용법을 익힐 수 있어 소련군과 공산국가에 널리 퍼졌다. 북한도 1958년부터 58식 보총이란 이름으로 AK-47을 자체생산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면서 AK-47은 서방측에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소련과 중국은 공산주의 확산 전략의 일환으로 대량의 AK-47을 베트남을 비롯한 국제 분쟁지역에 공급한다. 덕분에 각지의 공산 반군은 AK-47을 가지고 미국제 M-16으로 무장한 정부군과 맞서 싸우는 ‘대리 냉전’을 벌였다.
중동에서는 아랍 민족주의의 도구로 쓰였다. 모래바람 속에서도 아무 문제 없이 작동하는 AK-47은 중동 전쟁 기간 동안 아랍 육군의 핵심 무기였다. 이 총의 우수함을 눈여겨본 이스라엘은 자국산 갈릴 소총 개발에 참고했다. 아랍 테러리스트들도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를 시작으로 세계 각지에서 AK-47을 사용했다. 오사마 빈 라덴 또한 테러리스트 훈련 캠프에서 AK-47을 사격하는 장면이 방영되기도 했다.
소말리아 해적들도 이 총을 즐겨 쓰고 있다. 삼호 주얼리호를 납치한 해적 아라이가 석해균 선장에게 총격을 가했을 때 AK-47을 사용해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렇게 AK-47이 널리 사용됐지만 정작 설계자인 칼라시니코프는 혜택을 받지 못했다. 사유재산권이 없던 구소련에서 개발돼 특허권 제약 없이 설계도와 제작 기법이 마구 뿌려졌기 때문이다. 미국제 M-16 소총의 개발자인 유진 스토너는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칼라시니코프는 정부의 연금으로 근근이 여생을 보내야 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AK-47은 많은 개량을 거쳤지만 정규군에서 예전만큼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 1달러로 연명하는 나라를 중심으로 수천만 정이 쓰이고 있어 오랜 세월동안 칼라시니코프의 유작은 우리 곁에 남아있을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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