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원래 대학 3학년까지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다녔다. 4학년 때 전공을 동양화로 바꾼 그는 단순하지만 간결하고 깊이 있는 수묵화를 그렸다. 평소 그는 “한국 사람은 한국의 것을 그려야 한다”는 말을 자주했다. 수묵화는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전개해 나간 것이다.
2000년대에 주로 발표했던 화사한 꽃 그림에 대해 일각에서는 “웬 외도인가?”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생전에 그는 “원래부터 수채화를 그렸던 사람이라 채색에도 감각이 있었어요. 나이를 먹으니 꽃이 좋아지더라고요. 꽃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잖아요. 사람도 변하고 이념도 변하지만 자연은 그대로라는 생각도 했고요. 게다가 수묵화는 수도승 같은 절제를 필요로 하지만, 아크릴이나 유화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니 더 즐거운 마음이 들었어요”라며 담담히 화답했다.
그는 입버릇처럼 다시 수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되뇌었다. 아무래도 채색은 즐거움은 있지만 수묵보다는 깊이가 얕다고 했다. 보다 자극적인 시각요소에 물든 사회적 분위기가 그로 하여금 꽃 그림을 그리게 만든 것이다.
이런 심정을 반영하듯 그는 꽃 그림을 그리는 시기에도 사군자 그림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작업실을 방문한 노화랑 노승진 대표에게 사군자 그림을 들켜버렸다. 즉석에서 전시가 기획됐고 결국엔 유작전이 됐다. 4∼18일 노화랑에서 열리는 ‘송수남 4군자’전은 그렇게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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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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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 |
남천은 꽃그림을 그리고 발표하면서도 자신의 예술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군자 그리는 일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마음을 안정시킬 때, 혹은 여유로운 마음을 그림으로 드러내고자 할 때, 사군자를 늘 그렸다. 특별한 그림을 그린다는 의식보다는 매일 자신을 수양하는 자세로 국화와 대나무 그리고 난초와 매화를 그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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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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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
붓 가는 대로, 붉은색을 사용해서 그린 국화는 파란 가을 하늘과 맞닿아 가을이 갖고 온 쓸쓸함을 덜어 준다. 검고 쭉쭉 뻗은 대나무 잎은 힘이 넘쳐 한여름의 무더위도 날릴 것 같다. 작은 괴석 옆에 수줍게 핀 난은 제 잘난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지 잎을 위로만 세우고 있다. 남천의 생전 모습과 성격을 많이 닮았다. 소탈하고 격의없는 그의 웃음이 그대로 사군자에 녹아들어 보는 이들에게도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한다. 남천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02)732-3558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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