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9년 미국 뉴욕 도박판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이 2013년 무대를 선보이며 새로운 맛을 냈다.
꾸준한 인기와 관심 속에 공연된 스테디셀러 뮤지컬답게 매력적인 소재와 캐릭터는 관객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을 지녔다. 작품의 명성을 이끈 탄탄한 바탕은 유지한 채 캐스팅이나 구성, 무대장치를 젊은 감각으로 채운 점이 신선하다.
한 번도 내기에서 진 적 없는 전문 도박사 스카이와 순진한 선교사 사라, 14년 전 약혼은 했지만 도박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네이슨과 화려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한 남자만 바라보는 쇼걸 아들레이드. 네 청춘 남녀의 사랑과 의리 등 인생에 대한 승부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1920년대 도박사와 선교사의 사랑, 카바레 핫박스 쇼걸의 순정은 시대가 변한 탓에 오늘날 관객에게 100% 공감을 주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스마트한 디지털 문명에서 주사위 한 번 굴려 승부가 갈리는 도박 역시 약간의 실소를 머금게 한다. 하지만 자칫 고루할 수 있는 고전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인생의 가치를 코믹하고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따분함을 덜어낸다.

특히 네이슨과 아들레이드가 결혼을 두고 겪는 갈등은 현재의 정서로 받아들여지는 지점이다.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한 남자만을 바라보며 그와의 결혼식을 꿈꾸는 쇼걸의 말 못할 속내는 코믹하지만 웃음만으로 흘려보내기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결혼식을 갈망하는 아들레이드와 결혼이란 제도에 구속되고 싶지 않은 네이슨의 충돌은 결혼에 대한 동상이몽을 지닌 남녀의 고민과 일맥상통한다.
작품은 개성 있는 캐릭터와 위트 있는 대사로 남녀 간의 사랑, 남자들의 우정 등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를 시종일관 밝은 톤으로 이야기한다.
최근 브라운관에서 조명 받거나 뮤지컬에서 내공을 다져가는 배우들이 멋지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나 보다 풍부한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스카이 역을 맡은 배우 김다현, 류수영, 송원근과 사라 역의 이하늬, 김지우는 캐스트 조합에 따라 색다른 캐릭터의 매력을 발산한다. 20년 만에 네이슨 역으로 관객 앞에 선 박준규는 특유의 넉살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같은 역의 이율이 만들어내는 철부지 연하남 네이슨과는 다른 분위기다.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는 무대와 음악에서도 느낄 수 있다. 빌딩 숲 속의 화려한 네온 불빛과 브로드웨이 거리, 화려한 뉴욕 클럽 핫박스, 도박판이 벌어지는 맨홀 밑 지하세계 등 당시 뉴욕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한 무대가 현대적으로 구현됐다.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올라가 하나의 무대 장치로 활용되는 것 또한 생동감을 부여한다.
도박판이 배경인 만큼 이야기 전개는 긴박하고, 그만큼 강렬하게 관객을 몰입시킨다. 내기 한 판에 돈과 명예를 걸지만 결국 사랑과 우정 등 인생의 중요한 가치에서 승리한 자야말로 최후의 승부사임을 이야기한다. 여느 관객의 기대와 달리 스카이-사라 커플보다 네이슨-아들레이드 커플 쪽에 비중이 실린다는 점은 다소 아쉽지만 유쾌한 웃음 한 보따리로 복잡한 고민과 잡념을 잊을 수 있다는 점은 꽤 매력적이다. 11월1일부터 2014년 1월5일까지 BBC씨어터에서 공연.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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