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보다 훨씬 자세하고 내용도 방대해
영화 ‘광해’ 등 소재 제공 … 활용 가치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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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번역팀 엮음/1만2000원 |
단편적인 얘기로만 전해지는 조선시대 승정원일기가 본격적으로 소개된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인조 때인 1623년부터 1910년까지 288년간의 기록을 적은 3245책, 2억4300만자의 승정원일기 가운데, 흥미로운 것을 골라 책으로 엮어냈다. 그러나 한문 번역가 10여 명이 매달리는 번역 작업은 앞으로 100년 걸린다고 하니 현시대 사람들은 완역본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왕명을 출납하는 비서실 격인 승정원이 왕의 숨소리까지 기록한 내용인데, 조선왕조실록보다는 훨씬 자세하게 궁중의 내막이 소개됐다. 책 제목으로 잡은 ‘후설’은 목구멍(喉)과 혀(舌)라는 뜻으로 승정원의 별칭. 통상 왕과 신하들이 국사를 논의하는 빈전에 사관이 사초를 적어 왕조실록으로 전해지곤 했으나, 승정원일기는 그야말로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전부 망라한 궁중의 기록이다. 인조 대 이전 것은 임진왜란 등 전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방대한 역사기록물인 ‘명실록(明實錄)’이 2964책, 1600만자인 데 비해 승정원일기는 규모가 훨씬 방대하다. 양이 많은 것은 그만큼 내용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암행어사 박문수의 기록을 비교해보면 승정원일기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영조실록에는 박문수에 대해 “연석에서 더러 골계적인 말을 하고 행동이 거친 병통이 있었다”고 쓰여 있다. 익살스럽고 거친 행동거지라고 간단히 적었다. 승정원일기는 다르다. 영조 8년 12월15일 기록에 박문수의 언급이 나온다. “대각(臺閣)에 있는 자들은 행여 정권을 잡은 자의 눈에 거슬릴까 두려워 마치 노예처럼 굴며 입을 다물고만 있으니, 어찌 이러고도 나라다운 나라가 되겠습니까”라고 쓰여 있다. 영조 9년 1월25일 기록을 보면 박문수는 “근래 환국(換局)이 빈번하다 보니 조정 신하가 겁을 먹어 모두 땅에 코를 처박고 있습니다. 임금과 신하는 아비와 자식의 관계와 같은데 자식이 아비의 얼굴을 쳐다본다 해서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왕의 얼굴을 쳐다보면 안 될 게 뭐가 있느냐는 말인데, 역적으로 몰려도 할 말이 없다. 박문수의 대쪽 같은 성품이 생생하게 읽혀진다. 박문수는 임금 앞에서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다른 신하와 논쟁할 때에는 상대의 지위와 상관없이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아 왕조실록을 적는 사관마저 좋지 않게 기록했다. 박문수의 거친 언행을 벌해야 한다고 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영조는 “박문수가 아니면 누구에게 곧은 말을 듣겠는가”라며 오히려 두둔했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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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 박문수 초상화(왼쪽)와 박문수가 감찰 활동 중에 누이가 죽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숙부가 보내자, 숙부에게 한 답장. 수원박물관 소장 |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의 국상 때 염하는 모습, 승지 후보를 결정하는데 이조판서와 이조 낭청이 다툰 일화, 관원의 고과 평정 잘잘못에 대한 임금과 신하들의 논쟁, 임금의 부름을 47차례나 거부하고 칩거한 고관의 일화 등이 소개된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일기 가운데 역사적 사건과 관련 있는 기록을 골라, 그 시대적 배경과 해설자의 설명도 곁들였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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