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넓은 시각으로 정책 펼쳐야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위상이 확 달라진 정부 부처가 문화체육관광부다. 과거 정부에서는 외교·국방·복지·교육에 밀려 문화부 직원들 스스로 ‘변방’이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 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문화’를 19번 언급하며 ‘21세기는 문화가 국력인 시대’라고 역설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4대 국정 지표에도 경제부흥, 국민행복, 평화통일 기반 구축과 함께 ‘문화융성’이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문화융성이 국가적 과제로 꼽힌 데는 우리나라가 이제는 어느 정도 물질적 풍요를 이뤘지만 자살률 세계 1위, 국민행복지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7위 등에서 보듯 ‘행복’과는 거리가 먼 만큼 삶의 질을 높여 ‘국민 행복시대’를 열자는 취지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진룡 전 문화부 차관(고시 22회)을 이 과제의 적임자로 판단해 장관으로 임명했다. 문화부 출신의 장관 발탁은 1968년 문화공보부로 출범한 이후 사상 처음이다. 유 장관 임명 발표 때 이 장면을 TV를 통해 지켜보던 직원들은 ‘와!’ 하며 환호했다고 한다. 고시 출신 엘리트의 성실함과 경험을 중시하는 이 정부가 과거 문화부 장관에 정치인과 예술인을 앉혀봤으나 제대로 하지 못한 만큼 이번에는 문화부 출신에게 그 일을 수행해보라고 기회를 준 셈이다.
그로부터 6개월여가 지난 지금, 이들은 과연 잘해내고 있을까. 일부 외형적인 성취는 인정하지만, 골치 아픈 일은 피하고 생색나는 일에만 앞장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힘이 세진 문화 관료들이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하나의 예가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사태다. 최근 메가박스는 이 영화를 “보수단체의 협박이 있었다”며 상영을 중단했다. 이에 영화인 등 예술인·시민단체·야당 등에서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등급이 12세 이상으로 누구나 볼 수 있는 영화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상영이 중단돼 문화계가 시끄러운데 주무 부처인 문화부는 이와 관련된 언급이 일절 없다. ‘거친’ 예술단체와 야당이 낀 골치 아픈 일인 만큼 나서봤자 좋을 일이 없다고 계산한 듯하다. 야당은 “(정부가) 겉으로는 문화 융성을 얘기하지만 이런 식으로 영화상영이 중단되면 이는 문화폭력과 다를 바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유 장관의 언급은 고사하고, 문화부 대변인의 성명조차도 없다.
이런 문화부가 문화재청의 업무에 대한 개입은 적극적이다. 문화재청장이 한사코 반대한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등 국보와 보물의 해외 전시를 국립중앙박물관의 요청을 받아들여 승인케 한 것. 문화재청은 정부가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을 감안해 1999년 독립시킨 차관급 기관이다. 안전행정부 장관이 외청인 경찰청장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일은 없다. 유 장관은 이번 건으로 ‘갈등을 조정한 장관’으로 언론에 비치는 소득은 얻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 문화재 정책이 며칠 사이 ‘불가’에서 ‘반출가능’으로 결정된 데에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는 비난은 면키 어렵게 됐다. “지금 밝힐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왜 이런 결정이 났는지 드러날 것”이라는 인사의 얘기는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박태해 문화부장 |
유 장관이 얼마 전 국고지원 사업을 대폭 정리해 1000개 이하로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전시성 예산 절감을 위한 조치로 바람직하나 선정 과정의 공정성·투명성이 관건이다. 한 문화계 인사는 “예술단체들이 지원금을 따기 위해서 과거에는 정치인에 줄을 댔다면 이제는 단단해진 관료집단에 잘 보여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국민행복을 위한 문화융성이 문화 관료들의 융성이어서는 곤란하다. 다음달 ‘문화융성’이 국정감사 도마에 오른다. 지켜볼 일이다.
박태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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