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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지금 이 시대의 진짜 모습… ‘전통’을 찾아라

입력 : 2013-09-17 19:27:44 수정 : 2013-09-17 19: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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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眞鏡)’전을 통해 본 한국 현대 동양화의 현주소
모처럼 우리 시대의 감성과 미학이 담긴 한국 현대 동양화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전시회가 마련된다. 10월 27일까지 열리는 OCI미술관의 ‘진경(眞鏡)’전이다. 12명의 작가가 참여해 평면 설치 사진 등 4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요즘의 동양화가 현대의 풍경과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자유로운 표현 방식으로 펼쳐나가는 양상에 주목하고 있다. 지필묵(紙筆墨)을 뛰어넘는 재료 선택에서부터 일상과 사회 문화적 현상에 밀착하는 소재의 선택, 평면과 입체, 영상 등이 혼융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그 표현 양상이 매우 다층화 되어가고 있다. 심지어 서양화의 영역까지 유연하게 넘나들기까지 한다.

우리 시대의 눈높이에 맞춘 친근한 동양화의 양상이라 할 수 있다. ‘거울에 비친 지금 이 시대의 진짜 모습을 다룬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김선형, 유근택, 박병춘, 박종갑, 임택, 김민호 등으로 구성된 2000년 초의 ‘동풍(東風) 그룹’활동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동시대의 삶과 문화 현상의 리얼리티를 담아낸 성과는 동양화단에 또 하나의 초석이 되었다.


김정욱의 ‘무제’. 모호한 인물을 통해 자폐적인 현대인의 초상을 형상화 한 작품.
◆일상의 순간…풍경과 환영 속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동양화의 관념성을 현실로 끌어내리는 데에 집중해온 유근택은 일상 속에서 늘 만나게 되는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정서적 교감을 슬로우 모션의 서사로 표현한다. 정재호는 재건축 직전의 노화된 건축물을 포착하거나 지금은 쓰지 않는 구식 전화기를 통해 향수를 불러온다. 이영빈은 내부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한옥을 통해 자신과 세상과의 관계를 들려준다. 양유연은 개인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물리적 상처를 하나하나 클로즈업하여 정신적 외상에 대한 정화를 시도한다. 이들 작가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일상의 어느 한 순간이 전해주는 깊은 울림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풍경 속으로 들어가 함께 호흡하는 일군의 작가들도 있다. 전통적인 진경산수를 현대적 풍경으로 번안하는 데에 매진해온 박병춘은 ‘흐르는 풍경’에서 그곳에 있었던 자신과 그곳에서 연상되는 추억의 혼재를 통해 풍경이 곧 자신이자 기억이라는 교감을 보여준다. 산수풍경을 아예 공간 밖으로 옮겨오는 작업을 해온 임택은 신작 ‘점경와유(點景臥遊)’를 통해 옮겨온 풍경을 눈과 감각으로 유람하면서 개인의 경험과 상상을 덧붙여 와유 사상이 내재된 산수화의 개념을 보여준다. 김민호는 인터넷을 통해 서울 도로 곳곳에 설치된 CCTV 속 이미지들을 수집하여 특정한 공간과 시간 속에 담긴 도시인의 흔적들을 재구성했다. 김보민은 겸재 정선이 우리 국토의 풍경을 다루었듯이 ‘한강’, ‘선유’ 등 현대의 도시 풍경을 파노라마식 움직임과 시선으로 펼치고 있다.

환영과 상상의 언어로 현대인의 내면을 투사하는 작가들도 있다. 강렬한 형상을 띤 비현실적인 인물들을 다루어온 김정욱은 평온하고, 애잔하게, 혹은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이름 없는 모호한 인물 속에서 과부하에 시달리고 고독 속에 자폐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이진주는 마음 저편에 유폐된 오래된 상처와 기억들을 다시 불러와 불편한 진실, 불안한 무의식을 명징하게 응시하는 초현실의 꿈 속 세계를 드러내, 상처의 치유를 공유하고자 한다. 서은애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전통 산수화의 미학에 투영하여 시공을 초월한 이상 세계를 펼쳐 보인다. 손통현은 현대의 팝 문화 현상들을 동양화의 전통적인 조형성 안으로 수렴하여 유머와 위트를 보여준다. 

임택의 ‘점경와유(點景臥遊)’. 작가의 경험과 상상이 덧붙여진 풍경화.
◆실종된 동양화 전시


한동안 동양화 전시를 만나기 힘들었다. 간혹 장르 구분이 없는 주제 전시에서 동양화 작품들을 볼 수는 있었지만, 기획전 형태로 꾸며진 예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동양화에 대한 담론조차 썰물처럼 잦아들었고, 있더라도 드문드문 물밑에서만 들려왔다. 동양화의 힘이 너무 빠졌다는 얘기다. 작가의 수나 역량이 미약하고 성장 속도가 느리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체의 논리가 만연한 이 시대에 동양화 고유의 것이 의미를 가지는가. 다시 말해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이 필요한가라는 제기는 오래된 질문이 됐을 정도다.

해방 후 우리 것 찾기의 논리 속에서 쳇바퀴 돌듯 그야말로 지겹도록 따져온 정체성에 대한 설왕설래는 동양화로 부를 것인가 한국화로 부를 것인가를 따져 묻는 데까지 이르렀다. 변화된 시대와 어울리지 못하고 뒤처진 듯 겉도는 것 아닌가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다. 고민과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닌지 슬쩍 의심하는 눈초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과연 동양화단은 가능성이 없는 것인지, 그야말로 답보 상태가 맞는 것인지. 그렇다면, 왜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OCI미술관의 ‘진경’전은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최정주 수석큐레이터는 “지난 100년 동안 동서양 미술계를 통틀어서 한국 근현대 동양화만큼 모질게 질곡의 늪을 헤쳐온 분야가 있을까 싶다”며 “아무 준비 없이 덜컥 서양 문화를 만났던 일제 강점기와 1953년 직후 시기의 딜레마를 생각해보면, 자의식 생성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기보다는 어찌어찌 자생하기도 바빴던 여정이었고, 그 틈에서도 무던히 실험과 모색이 있었지만 여전히 시대정신이라는 것을 담아내는 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의 동양화단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타 분야보다 삼중고를 겪으며 부단히 움직여 왔다”며 “작가들 스스로의 반성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기다려주는 미덕, 성숙한 자세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진주의 ‘맨틀’. 마음속 저편의 오래된 추억과 상처들을 불러낸 치유의 풍경.
◆우리끼리를 넘어 세계와 공감해야

광복 이후, 벌써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의 전통회화는 주로 왜색 탈피, 민족적 미감, 현대적 미감 등을 추구해 왔다. 이제 잠깐 걸음을 멈추고 지난날의 일들을 정리할 때가 됐다. 만약, 광복 후 우리가 왜색에 시대적 정서를 더해 새로운 미술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물론 세계 미술시장 공략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 됐을 것이다. 진정으로 한국 미술의 발전을 바란다면 우리 문화와 외래문화의 건강한 영향관계를 구축하고 세계 미술시장에 눈을 돌려야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전시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눈길을 끈다. 한 미술계 인사는 “이 시대와 공감하는 동양화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고 하지만 ‘우리 정서만을 위한 우리끼리의 전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동시대를 사는 세계인과의 공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이미 장르를 허문지 오래다. 이제는 신선하면서도 세계인과 함께 공감할 수 예술적 영역을 찾아 발전시킬 때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한국 그림’을 바라보면, 특별한 강점이 없다. 지금 우리가 ‘전통’이라 칭하는 것들은 당대 미술시장에서 살아남아 화단을 이끌었던 스타일이다. 현재 우리는 ‘전통’이라는 우성인자와 교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전통을 계승하든, 부정하든, 도전하든 21세기 우리 그림의 출발점은 우수한 전통에서 찾아야 한다. 미술시장에서 현대 미술의 발전을 이끄는 것은 전통회화이다. 전통미술이 살아야 현대미술도 산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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