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안전’ 솔직한 입장도 내놓길 프랑스 출신의 교육자 쿠베르탱에 의해 약 1500년 만에 올림픽이 다시 현대 역사에 등장하면서 ‘올림픽 정신’은 선의의 경쟁, 공정한 참여, 객관적 평가 등과 같은 가치의 상징이 됐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 1회 올림픽이 개최된 이래 작년 2012년 런던올림픽에 이르기까지 총 30회에 걸쳐 올림픽은 세계평화와 화합의 한마당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해 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는 2020년 제 32회 올림픽 개최지로 일본의 도쿄가 최종 선정됐다. 아무리 멀고도 가깝다고 하지만 일본에서 세계 평화의 한마당이 지난 1964년 18회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다고 하니 이웃의 경사에 우선 축하할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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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세계를 화합하는 정신을 토대로 아시아 문명이 존중하는 고귀한 인본주의적 가치를 잘 실현할 수 있을 것인지 잠시 복잡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 올림픽 개최를 통해 일본이 실현하고픈 평화와 화합의 가치가 위안부와 강제징용 사실을 부인하며 배상에 등돌린 그들의 과거사 인식과 주변국과의 외교적 관계에는 왜 반영되지 않고 있는지 우리는 물론 세계 사람들은 궁금하다.
작년 12월 총선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지난 수개월간 대체로 양자외교관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어찌 보면 지난주 러시아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총리로서 재집권한 이후 최초의 의미 있는 다자외교 무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G20 정상회의가 채 막을 내리기도 전에 아베 총리는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위한 막바지 외교전을 펼치고자 아르헨티나까지 날아가 총력전을 전개했다고 한다. 이번 도쿄 개최지 선정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집요한 노력과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정체성 역시 사안과 입장에 따라 분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위안부 할머니 문제와 납득하기 어려운 영토분쟁을 자초하는 일본의 모습과 세계평화와 화합의 올림픽 정신을 강조하는 일본의 모습은 분리돼 존재할 수 없다. 최근에는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후쿠시마 원전사태의 안전 문제와 맞물려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계기로 이 문제에 대해서도 보다 솔직하고 담백한 일본의 모습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제는 동북아 공동체적 가치와 글로벌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가 일본이 정의하는 국가이익 속에 잘 어울려 섞이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는 그다지 야박하지 않다. 오늘날 한국인의 보편적인 생각은 남의 잔치를 있는 그대로 축하해 줘야 한다는 정도의 세계 시민 정신쯤은 갖추고 있다. 동시에 한편으로 우리는 지금 도대체 어떤 일본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솔직한 심정까지 타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마디로 도쿄 올림픽 개최에 대한 복잡한 단상이 아닐 수 없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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