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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욕망’ 거세당한 가족… 그 파멸의 끝은

입력 : 2013-09-05 21:09:30 수정 : 2013-09-05 2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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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
남편의 외도로 시작된 증오, 파국의 시작
가족·성욕·성기에 대한 본질적 담론 제기
대사 한마디 없이 표정과 몸짓으로만 표현
김기덕 감독의 열아홉 번째 영화 ‘뫼비우스’는 아버지, 어머니, 아들로 이루어진 한 가족을 통해 가족은 무엇인가, 욕망은 무엇인가, 성기는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담론을 제기하는 작품이다. 두 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으나 세 번에 걸친 심의 끝에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고 5일 개봉했다.

김 감독은 “한국사회의 윤리 안에서 성과 욕망이 주로 음란하고 타락한 이미지로 인식되는 상황 아래, 크게는 가족에 대해서, 더 나아가서는 인간에게 의식주 다음으로 중요한 욕망, 성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힌 바 있다.

뻔뻔하게 외도를 즐기는 남편(조재현)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던 아내(이은우)는 어느 날 아들(서영주)이 수음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아들의 성기를 잘라낸 뒤 집을 나간다. 아들만큼은 그렇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깨지는 순간 느낀 배신감과 함께 ‘남자’에 대한 분노가 뒤엉켜 저지른 일이다. 자신의 부도덕한 행동 탓에 평생 치유될 수 없을 고통을 안고 살아 갈 아들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아버지는 아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사건의 단초가 된 자신의 성기를 절단하고 아들의 정신적, 육체적 회복을 위한 방법들을 모색한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대로 허를 찌르는 상상력을 펼친 김 감독답게 이번에도 기상천외한 장면이 가져다주는 소소한 웃음은 극의 긴장감을 풀어주며 관객들을 화면 속으로 끌어들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육체적 쾌감을 되찾아 주기 위해 ‘스킨 마스터베이션’을 직접 체험해 본 뒤 이를 전수한다. 돌멩이 등을 이용한 마찰로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날 때 쾌감을 느끼는 방법이다. 성기를 잃으면 몸 전체가 성기가 되어 쾌락을 느끼려는 본능을 찾는다는 이론이 근거지만 잠시 느끼게 되는 쾌감에 이어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차후 수반될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같은 행위를 끊지 못한다. 성욕은 그런 것이다.

이렇듯 어떠한 고통도 능히 감내할 만큼 강렬한 성욕에 대한 집착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은 아들과 매점 여인이 나누는 ‘사랑의 행위’ 장면이다. 매점의 여인이 아들의 한쪽 어깨 위에 칼을 꽂는다. 아들은 잠시 고통을 느끼는 듯 하더니 곧이어 여인의 가슴을 탐닉한다. ‘김기덕표 영화’다운 상징이자 특징이다. 김 감독의 영화를 즐겨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고통을 느낀 아들이 이제 곧 어깨에 꽂힌 칼을 뽑으려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영화는 여기서 충격의 수위와 강도를 더욱 높여 나간다. 어깨에 꽂힌 칼을 좌우로 흔들며 욕정을 채워 나가기 때문이다. 수음을 하듯. 어깨에 꽂힌 칼은 더 이상 칼이 아니다. 이미 남자의 성기가 되어 있는 것이다. 성기를 잃어버린 남자가 찾아낸 새로운 쾌감 추구 방법. 우화적이다. 김 감독의 영화는 그의 스타일로 풀어야 쉽다. 어깨 위의 칼을 여전히 칼로만 여긴다면 김 감독 또한 여전히 ‘괴물’로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준 칸·베니스·베를린 영화제의 심사위원들과 관객들, 반대로 그의 영화에 제한상영가를 매긴 우리나라의 등급 심사위원들과 ‘김기덕 저격수’를 자임하고 나서는 일부 평자의 현격한 시각차는 여기에 있다.

김기덕 감독이 ‘검은색’을 아프게 뚫고 나온 ‘하얀영화’라고 소개한 ‘뫼비우스’는 욕망을 거세당한 가족의 치명적 몸부림을 담아낸 작품으로, 가족·욕망·성기에 대한 본질적 담론을 제기한다.
아들은 결국 아버지가 스스로 잘랐던 성기를 이식 받는다. 아들을 위해 뭐든 해보려는 아버지의 부성애가 두드러지는 순간이다. 부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원하던 대로 남편의 성기를 거세한 셈이다. 남편이자 아버지는 아들에게로의 이식을 통해 원죄를 회개한 셈이 된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이식받은 성기는 집에 돌아온 엄마의 자극에만 반응한다. 엄마는 남편의 반대에도 아들에 대한 뒤늦은 후회와 참회하는 심정, 그리고 모성애로 수음을 통해 아들의 욕구를 해소해준다. 아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통곡한다.

남편이 골프채로 책상에 놓인 시계를 툭툭 건드려보는 행동과 아내가 화장대 앞 스탠드 스위치를 껐다 켰다 반복하는 행동, 아들이 방 안에서 로봇장난감을 거칠게 다루는 행동은 이제 앞으로 가족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를 두고 답을 잃은 세 사람의 불안한 심리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왜 ‘뫼비우스’라는 제목이 어울리는지 알 만해진다.

아내이자 엄마가 립스틱을 입술에 바른다. 마침내 화장을 마친 그녀가 ‘여자’로서 아들방 문을 두드린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 기다리고 있다.

주연들뿐 아니라 조연·단역들까지도 대사 한마디 없어 영상만을 집중해서 볼 수 있다는 점도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나쁜 남자’(2001) 이후 12년 만에 김 감독과 손발을 맞춘 조재현의 연기를 주목해서 볼 만하다. 그는 영화 도입부 ‘이기적인 남편’, 중반부 ‘진한 부성애를 보이는 애틋한 아버지’, 종반부 ‘질투에 휩싸인 두려운 남자’ 등 아버지의 복합적 캐릭터를 제대로 담아냈다. 아내(엄마)와 매점 여인의 1인 2역을 한 이은우의 자신감 넘치는 연기와 색깔 있는 매력은 차기작을 기대케 한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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