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회의 문 걷어차면 안 돼 비무장지대(DMZ)는 상처 많은 땅이다. 1953년 정전협정대로라면 남북의 병사들은 휴전선에서 2㎞씩 물러나 적어도 4㎞쯤 떨어져 있어야 한다. DMZ의 동서 길이는 약 248㎞. 총 면적은 992㎢여야 계산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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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현 논설위원 |
실은 DMZ 자체가 슬픈 상흔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웅변하는 역사적 흉터가 따로 없다. 남북은 휴전 직전까지 밀고 밀리면서 그 일대에 수많은 피를 뿌렸다. 정전 이후엔 지뢰가 매설됐다. 현재는 100만개 안팎의 지뢰가 깔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엄한 묘역이자, 거대한 지뢰밭이다.
자연의 생명력은 경이적이다. 때론 지옥이 천국으로 바뀐다. 서태평양의 비키니섬이 좋은 예다. 미국의 46년 원폭 실험으로 사라졌던 산호초 군락이 불사조처럼 되살아나 경탄을 자아낸다. DMZ도 그렇다. 5097종의 생물종과 106종의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탈바꿈했다. 유네스코의 ‘접경지역 생물권 보전지역(TBR)’ 후보지로도 거론된다. 죽음의 땅이 생명의 땅으로 변했다. 마술과 같은 대반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DMZ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하자고 북한에 제안했다. 또 다른 대반전의 씨앗이다. 김칫국 마실 일은 아니지만 여간 반갑지 않다. 자연이 앞장서고 인간이 거든다면 DMZ는 완벽히 거듭날 수 있다. 지독한 상처를 씻어내면서 한반도 미래를 밝힐 절호의 기회다.
북한 반응도 음미할 만하다. 5월엔 ‘겨레에 대한 모독’이라고 발끈했지만 막후에선 주판알을 튕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최근 “개성공업지구 사업을 적극적으로 잘해야 DMZ에 공원을 만드는 것도 잘 되든지 말든지 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권력층도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어둡게만 볼 일이 아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공원 청사진이다. 남북 모두 정치적 꿍꿍이나 경제 이해관계는 접어둬야 한다. 청사진이 제대로 나와야 액션 플랜도 선명히 나올 수 있고, 공원 조성에 필수적인 지구촌의 관심과 협력도 끌어낼 수 있다. 바로 그런 측면에서 세계적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조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윌슨은 재미 학자인 김계중 박사와 함께 2002년 12월10일 뉴욕타임스에 낸 기고문에서 “자연계가 전쟁이 황폐화시킨 지역을 복구했다”면서 “지상에 이와 비교할 장소가 없다”고 했다. 온대 생태계를 대표하는 DMZ 가치와 희귀성을 일깨운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밑줄 칠 곳은 그 다음 대목이다. 윌슨은 불도저식 프로젝트를 경계했다. 예컨대 “어떤 영구적인 구조물도 (DMZ에) 남겨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윌슨이 보기에 DMZ는 금수강산을 복원할 마지막 기회의 문이다. 그는 당시 경협 차원에서 이뤄진 철도, 도로 건설 등을 싸잡아 비판했다. 마지막 기회의 문을 걷어차는 반환경 행태라는 이유에서였다. 윌슨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DMZ에 치명상을 입히는 근시안적 접근은 절대 금물이다. 길 하나 놓는 것에도 신중해야 한다.
일각에선 북한 군부가 반발할 것으로 내다본다. 일리가 있다. 기본적으로 갈 길이 무척 먼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산은 높고 골은 깊을 것이다. 하지만 옛말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차분히 나아가면 된다. 섣부른 염려에 한눈을 파는 대신에 정말 신경 써야 할 것은 청사진의 내용이다. 이상론과 현실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박근혜정부는 최우선적으로 눈 귀를 폭넓게 열어야 한다.
19세기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지구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인간이란 독소가 있다”고 했다. 아름답게 부활한 DMZ를 인간이 다시 해쳤다는 후세의 쓴소리는 없도록 해야 한다. DMZ에 대한 독소 노릇은 과거에 충분히 했다.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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