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뜰리에 언덕배기에 누워 모처럼 밤하늘의 별을 보았습니다. 별을 헤며 나는 뭘 하고 있나 모처럼 상념에 젖었지요. 요즘 들어 점점 제가 갈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가 질문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그에게도 50대 작가의 막막함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뒤로 물릴 수도 없는 인생이다. 제법 그림도 팔리는 작가지만 앞으로의 갈 길이 고민이 된다. 그렇다고 주위에서 함부로 작품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해줄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동료 작가들조차도 작품얘기는 서로 금기시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자칫 상처가 되기 쉬워서다. 작가는 그래서 더욱 스스로가 외롭다.
그는 근래 야경을 주로 그리고 있다. 불문율을 깨버리겠다고 작정하고 그의 작품에 돌직구를 날려 보았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냐고 다그쳤다. 그는 의외로 담담히 경청을 했다.
미술계는 그의 비 내리는 새벽 도시 풍경의 독특함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부터 도시 야경에 집착을 하고 있다.
“단순히 그림을 조금 바꿔 봐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작업이지요. 결국 가슴이 아닌 머리로 판단을 한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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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촉이 비에 젖은 도시의 새벽 풍경에서 가슴을 울리는 서정을 길어 올리고 있는 김성호 작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회화적이란 말을 최고의 찬사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승부를 걸겠다”며 새로운 각오를 밝혔다. |
“야경보다 비 내리는 도시 풍경을 그리고 나면 왜 그렇게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모르겠어요.” 그에게 산수화의 준법을 비 내리는 풍경에 접목해 볼 것을 권유해 보았다. 그리고 무조건 그림 유형을 바꾸기보다는 한 시기 작가의 대표적 작품 유형으로 자리매김될 때까지 밀어붙이라고 했다. 그런 연후에야 자연스럽게 다음 행보가 보이기 때문이다. 흔히 5∼10년의 기간이 요구된다.
“한 젊은 부부가 집을 사러 갔다가 그 집에 걸려 있는 저의 작품이 마음에 들어 집 흥정은 뒷전으로 미루고 그림을 그린 작가가 누군가 먼저 알아보고 저를 찾았어요. 부인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어린 시절 친정어머니와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서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종종 외국인도 그런 연유로 그를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비에 젖은 도시풍경에 매료된 것이다. 물(빗물)은 자기 모습이 없어서 상대를 비추면서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그만큼 묘사하는 데 작가의 감성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그의 가벼운 듯한 붓터치는 유화로 수채화의 서정성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는 유화는 색을 무조건 두텁게 입혀야 한다는 통념마저도 깨버리고 있다. 고생스럽게 그리기보다는 오랫동안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자기만의 감성을 끌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혹자는 인상파의 아류가 아닌가 묻기도 한다. 그와 이 문제에 대해서도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인상파는 특정 느낌을 유도하는 데 반해 김 작가는 익숙한 상황을 더 서정적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마치 “순이야!’ 불렀을 때 너무 흔한 이름이지만 시 안에서 익숙하면서도 왠지 정서의 극대화를 체험하는 것과 같다. 인상파 화가들은 입체감을 위해 자연의 빛을 이용했다면 김 작가는 도시의 인공빛에서 서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서정은 돌쇠 같은 의리파인 그와는 멀게 느껴진다고 말하자 그가 수줍게 웃었다. 우악스러운 그의 손에서 나오는 거친 붓터치에서 어떻게 그런 촉촉한 감성이 흘러나오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사실 저는 부드러운 남자예요. 겉은 딱딱한 것 같지만 속은 달달한 맛이 나는 과일 같은 사나이지요.” 새벽녘 그가 다시 작업실로 향했다. 캔버스와 씨름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수많은 스케치 작업과 수백 장의 사진을 거쳐 온전한 감성의 알갱이들을 건져 올린다.
“제 그림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감정을 느낄 것입니다. 저는 다만 제 그림을 통해 우리가 살아오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성과 서정, 이야기가 일깨워지기를 바랍니다. 예술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일상 속에 같이 숨 쉬고 공존하는 것임을, 우리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임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그의 그림의 매력은 역시 우리 현대인들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청량감과 신비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이 갖는 특성이 회화적이라는 말보다 더 적절한 말을 찾기는 어렵다. 그만큼 아날로그적 감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비 내리는 새벽 도시 풍경을 다시 그리겠다고 했다. 또 다른 차원의 ‘김성호표 그림’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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