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폴크스바겐코리아를 맡아 판매량을 1125% 늘린 박동훈 사장이 사임했다. 박 사장은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제 그동안 쌓아온 자동차 산업에서의 노하우를 또 다른 곳에서 활용해 볼 시간이 왔다”고 밝혔다. 박 사장의 다음 목적지는 르노삼성자동차다. 르노삼성 역시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박 사장을 영업본부장(부사장)으로 선임한다고 전했다.
1952년생인 박 사장은 2001년 고진모터임포트의 부사장을 시작으로 수입차 업계에 들어섰다. 2005년부터는 폴크스바겐코리아 사장으로 일해왔다. 재임기간 중인 2008년∼2012년은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회장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박 사장은 BMW의 김효준 사장, 포드코리아의 정재희 사장, 혼다코리아의 정우영 사장과 함께 소위 국내 수입차 업계의 1세대로 불린다.
업계에선 박 사장의 이직이 수입차 시장의 판도 변화를 예고한다고 풀이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인 사장 중심으로 바닥에서부터 시장을 공략한 수입차가 이제는 본국 임원들 중심으로 다지기에 나섰다”고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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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폴크스바겐 ‘폴로’ 신차발표회에서 만난 박동훈 사장. |
실제로 폴크스바겐코리아가 포함된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그룹(AVK)에는 재무총괄이사(CFO)에는 클라우디아 알렉산드로가 지난해 9월부터 일하고 있다. 또, 마틴 비즈웜 이사가 지난해 11월 부임해 마케팅과 제품을 총괄하고 있다. 대부분 한국인 임원들이 있었던 자리다. 이어 아우디 총괄 사장에는 지난해 말 요하네스 타머 폴크스바겐그룹 판매전략 총괄이 자리를 옮겨왔다. 본사 임원들이 요직을 점령했다.
이들은 폴크스바겐코리아에 대해 대대적인 ‘마른수건짜기’에 돌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부분을 모두 손보기 시작했다. 홍보와 광고대행사를 포함한 모든 외주 사업에 대해 3개 회사 이상이 경쟁입찰하도록 했다. 심지어 회사에서 보내는 경조화환을 납품하는 꽃배달 회사도 경쟁입찰을 받았다.
본사에서 파견된 이사급 관리자들이 기존 차장, 부장급에서 관리하던 5만원∼10만원의 소액지출까지 관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 회사의 재무담당이사는 “나는 당신들이 돈을 어떻게 빼돌릴 수 있는지 다 알고 있다”고 말해 한국 직원들을 아연실색게 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차는 잘 팔리지만 직원들에 대한 처우나 업무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본사에서 온 임원들이) 한국인 직원들을 색안경 끼고 보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폴크스바겐코리아의 한 차장급 직원은 “직원들의 경력이 쌓이면서 권한도 위임하고 의사결정도 해야 회사가 원활하게 돌아간다. 그런데 본사에서 파견 온 임원들이 말단 사원의 움직임까지 직접 관리하니 나 같은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사라졌다”며 “이렇게 일해서는 경력이나 향후 진로에 도움될 것이 없다고 판단해 퇴사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박 사장이 이직을 결심한 사유 가운데 하나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박 사장은 지난 4월 신차 ‘폴로’의 출시장에서 본사에서 온 임원들이 직원들을 압박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동안 수입차 업계가 급성장했다. 최근 본사 임원들이 와서 꼼꼼하게 따지는 것은 일종의 성장통으로 해석하고 있다. 몇 달만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4개월 후 성장통은 해결되지 않았고 박 사장은 결국 자리를 옮겼다. 박 사장이 이직을 결심했을 지난 7월 폴크스바겐코리아의 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124.3%가 증가한 2696대로 한국 법인 출범 이후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이다일 기자 aut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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