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아성(22)은 영화 ‘설국열차’(감독 봉준호)를 통해 제2의 날갯짓을 꿈꾸고 있었다. 봉준호 감독이 두 번이나 고아성을 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보였다.
“왜 하필 나일까. 생각 많이 해봤는데요. 감독님이 아마 가장 마음 편하게 ‘고생’시킬 수 있는 배우가 저 아니었을까요. 전해 들은 얘긴데, 설국열차가 처음 기획됐을 때 정말 많은 배우들이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며 사무실을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얘기들을 듣고 나니 더 꿈만 같아요. 제가 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게.”
봉준호 감독과 처음 작업한 ‘괴물’(2006)에서도 그렇고,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얼굴에 ‘숯 검뎅이칠’을 하고 나온다. 이제 한창 예뻐 보이고 싶을 나이인 그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런데 도리어 고아성은 “이젠 검뎅이칠이 더 편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빙하기,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지구에서 생존자들을 태운 채 17년간 달리는 순환열차를 배경으로 한 영화 설국열차. 그는 열차에서 태어나 자란 17세 소녀 ‘요나’를 연기했다. 요나는 사건 전개에 있어 중요한 열쇠를 쥔 남궁민수(송강호 분)의 딸이자, 종말 이후의 세계를 그린 영화에서 ‘희망’을 뜻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봉 감독님이 ‘다음에는 예쁜 카페에 앉아서 연기하는, 그런 영화 같이 해보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요. 과연 그럴 날이 올까요?(웃음) 감독님의 뮤즈나 페르소나? 이런 말 매우 영광이죠. 다음에도 불러주신다면 얼마든지 응할 생각이고요. 감독님이 설국열차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하셨을 때가 2008년쯤인데, 그때부터 전 5년간 요나 생각만 하며 살았어요. 대중 앞에 저를 잔 안 드러낸 것도 오직 설국열차 때문이었죠.”
그런데 막상 영화를 첫 공개하는 시사회 날이 되고 보니 서운한 마음부터 들었다. 극장에 들어서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고, 풀썩 주저앉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단순히 작품에 대한 애정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묵직한 뭔가가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아 있었다.
“그렇게 5년을 보내고 이제 세상에 나온 기분이랄까요. 사람들은 ‘폭풍성장’이라며 놀라워 하지만, 전 그냥 평범하게 살아왔어요. 요나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미 같은 게 있는데, 저란 사람은 아주 순응적이에요. 사람들이 시키는 거 다하고 잘 따르죠.(웃음)”

“그녀가 설국열차 첫 테이크를 찍는 모습은 너무나 강렬해서 완전히 뇌리에 박혔어요. 앞으로 배우의 삶을 걸어갈 텐데, 틸다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았어요. 틸다의 열정적인 모습 보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좁은 상상력 안에서 아등바등해왔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스윈튼은 설국열차 안에서의 절대자 ‘윌포드’(에드 해리스)를 추종하는 2인자 메이슨 총리 역을 맡아 독특한 외모와 함께 카리스마 연기를 펼쳤다. 고아성은 “틸다는 촬영 들어가기 전 이미 메이슨 총리에 대한 전사(前史)까지 꼼꼼히 구상해왔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틸다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얘기해줬는데요. 틸다가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작품에 빠져드는 모습을 전에는 본 적이 없었대요. 아마 봉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많이 컸던 것 같아요. 틸다와 한 작품에 출연했다는 건 저에게는 엄청난 행운이라 할 수 있죠.”
5년간 기다려온 설국열차가 드디어 개봉했고, 700만명에 가까운 관객들이 벌써 이 열차에 탑승했다. 작품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많은 이들이 고생한 만큼 결과도 좋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이제 고아성은 데뷔 후 첫 소속사와 계약을 맺고 본격 성인연기자로서 대중 앞에 설 계획이다. 그 첫 작품은 배우 김희애와 호흡을 맞추는 영화 ‘우아한 거짓말’(감독 이한)이다.
“조만간 촬영에 들어가고요. 아직 대본 리딩만 해본 상태라서 어떤 느낌일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연습 때 김희애 선배님을 뵀는데 마치 엄마 같은 따뜻한 모성애를 느꼈어요. 새로운 시도의 영화고, 저 역시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는 거니까 기대가 많이 돼요. 내년쯤 개봉할 것 같으니까 그때 또 만나요. 설국열차 많이 사랑해주시고요.(웃음)”

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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