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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 중동] <30> 산 위에 지어진 하얀 마을, 모로코 셰프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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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7-19 10:10:22 수정 : 2013-07-19 1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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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위 하얀 집들, 마치 양 떼 위로 푸른 하늘이 내려앉은 듯
건물 사이 골목길 거닐다보면 어느새 산 정상까지 올라가
카메라도 끄고, 화첩도 덮고, 마음에 자연을 담아
아실라에서 두 시간을 가면 탕헤르(Tanjer)다. 그곳에서 테투안(Tetouan)까지 가고, 또 그곳에서 셰프샤원(Chefchaouen)까지 갈 수 있다. 탕헤르에 산다는 아저씨가 “왜 탕헤르는 안 가보느냐”고 물어온다. 내가 “탕헤르는 위험하다고 들었다”고 하니까 옆에 있던 아저씨가 바로 “알리바바”를 외친다. 내가 맞다고 하니까 탕헤르에 사는 아저씨는 “그건 옛날얘기”라며 “지금은 도둑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옆에 있던 아저씨가 탕헤르 아저씨를 가리키며 “알리바바”라고 하자 그는 “나는 돈이 많다”며 지갑을 열어 보여줬다. 그런데 정말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 아저씨 부자네. 실은 내가 알리바바야”라고 했더니 주위 사람들까지 다같이 깔깔 웃었다. 탕헤르는 정말 잘사는 도시로 번창했고, 테투안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의 악명 높은 탕헤르가 아니었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 계속 버스를 바꿔 타느라 본의 아니게 중간에 있는 도시들도 구경하게 됐다.

산 위에서 바라본 모로코 셰프샤원 마을의 풍경. 푸른 언덕을 가득 메우고 이동하는 흰 양떼를 보는 것 같다.
산을 넘고 넘어 또 하나의 산에 오르니 터미널이 나와 버스에서 내렸다. 셰프샤원 마을 입구란다. 그곳에서부터 메디나(성벽) 안까지 걸어가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산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배낭을 메고 걷는 건 힘든 일이다. 이들이 흔히 이용하는 자그마한 차를 타고 메디나 입구까지 간다. 그 안은 차가 못 들어간단다. 그곳에서부터 걸어서 숙소를 찾는 일도 땀을 흠뻑 흘리게 했다. 몇 군데 숙소를 다녀본다. 한 숙소는 모든 것이 다 좋은데 창문을 열면 막힌 공간이라 자칫 감옥처럼 보인다. 마음에 들긴 했지만 답답한 창문 밖 풍경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다른 곳은 조금 더 비싸지만 방 창문을 열면 산이 보인다. 나는 이곳을 숙소로 정한다.

셰프샤원은 좁은 골목길들을 따라 거닐다 보면 산 정상까지 올라가게 만든다. 비탈진 골목길들 사이로 하얀색과 파란색이 적절히 칠해진 집들이 줄지어 있고, 어디서나 산 아래가 보인다. 그렇게 산 위를 올라가면 이 산이 정말 높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다른 산들은 모두 내 아래에 있다. 그리고 초록빛 산에 지어진 하얀 마을이 너무 아름답다. 무너져 가는 집 하나가 덩그러니 산 위에 홀로 있다. 그곳에 올라가니 누군가 앉아 산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또 언제까지 있을 건지 모를 그 사람은 하염없이 자연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을 감상하는 이들은 기껏해야 사진이나 그림에 담는 나와는 다르다. 바다에서는 파도가 온몸을 적셔도 가만히 그 자리에서 바다만 바라본다. 또 산 위에서는 바위처럼 산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한다. 그런 이들을 보니 나도 카메라를 끄고, 화첩도 덮고 마음에 자연을 담아본다. 그곳에서 해가 지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움직였다. 나도 그를 따라 산에서 내려간다.

셰프샤원에는 관광객이 많다. 그리고 배낭여행자 또한 많다. 관광객이 많으니 라마단 기간에도 낮에 식당에서 당당히 밥을 먹을 수 있다. 하루종일 굶는 사람에게 요리를 만들라고 하는 게 가혹한 일이긴 하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네 종교이자 또 직업이니까 받아들여야 한다. 노천카페에서 테(차)를 한 잔 하고 있을 때 일본 배낭여행자를 만났다. 내가 고양이 두 마리를 옆에 끼고 앉아 현지인들과 놀고 있을 때 일본 배낭여행자가 들어왔다. 그가 한국인일까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 비슷하게 그도 내가 일본인일까 생각했다. 서로 인사를 하면서 알았다. 그래도 동양인을 만난 것조차 반가웠다. 그의 이름은 ‘유키’였고, 나보다 어린 친구이며 6개월째 여행 중이라 했다. 나는 10개월째 여행 중이라면서 같이 친구가 되었다. 수동 필름 카메라를 들고다니는 것부터가 우리는 관심사가 비슷했다. 오랜만에 여행의 동반자가 생긴 기분이었다.

모로코의 대표적인 음식 ‘타진’. 쇠고기나 양고기, 염소고기, 생선 등을 넣고 야채와 함께 쪄낸 요리다.
모로코의 음식은 타진과 쿠스쿠스가 유명하다. 타진은 쇠고기나 양고기, 염소고기, 생선 등을 넣고 야채와 함께 쪄낸 요리다.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입맛에 잘 맞아 나는 밥과 함께 가끔 먹었다. 쿠스쿠스는 쌀을 야채와 같이 쪄낸 요리로 흔히들 주식으로 먹는 요리다. 이것도 맛있다. 이슬람 세력이 이곳까지 넘어오면서 가장 많이 가져온 게 향신료가 아닐까 싶다. 이슬람의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바람을 타고 이곳까지 넘어온 듯하다.

이슬람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안 먹는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에서 병균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더운 중동 국가들은 저장용 창고가 없었던 옛날에는 잡식성 돼지 탓에 전염병이라든지 질병이 많이 발생했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아예 금지시켰다는 이야기가 내가 보기에는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소는 흔하지 않아 많이들 못 먹었고, 양과 염소가 가장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육식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양과 염소로 요리를 많이 해먹는다.

그 이슬람 세력이 아프리카 북부까지 왔을 때 향신료와 요리도 같이 왔다. 중국의 누들(국수)이 세계로 전파된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이곳 모로코에는 소가 많기 때문에 쇠고기를 넣어서 먹는 요리도 많다. 소가 많다는 것은 다른 중동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그리고 또 모로코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가죽이다. 다음에 갈 도시가 페스인데, 그곳에 가면 소가죽을 만드는 곳이 있단다. 모로코에서 가죽을 만들어내면 좋은 가죽은 대부분 유럽으로 수출한다. 그래서 실제로 모로코 국내에서 유통되는 가죽 제품들은 질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다.

독특하게 생긴 모로코의 그릇들.
그렇다면 이곳의 토착민들은 누구였을까. 이슬람 세력이 와서 지금은 아랍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분명 그전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북아프리카 토착민인 베르베르인들이다. 모로코에도 아직 남아 있는 베르베르인들이 있다. 도시에서 만나는 베르베르인들은 그 후손이긴 하나 아랍인과 피가 섞인 사람도 많다. 지금도 사막에 살고 있는 베르베르인들이 존재한다. 이슬람 세력이 모든 것을 다 차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막의 거센 모래바람을 견뎌내며 천막에서 살고 있단다.

모로코 남쪽으로는 서사하라가 있다. 서사하라는 모로코와 구분되는 하나의 나라이지만, 지금은 모로코가 통제를 하고 있단다. 모로코의 지리적 위치는 모든 것에서 상당히 유리하다. 북쪽으로는 유럽과 가까이 접해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와 유럽의 길목인 셈이다. 지금도 모로코 안에는 스페인령의 땅이 몇 군데 존재한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든 유창한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들을 수 있나보다.

파란색과 흰색을 나란히 칠한 건물 외벽이 바다와 하늘이 닿아 만든 수평선을 연상시킨다.
셰프샤원의 집들은 하얀색과 옅은 파란색으로 칠해 놓았다. 그래서 하늘과 닮았다. 하늘의 구름 내지는 하늘빛이 산 위에 내려와 앉은 것만 같다. 그리고 집 안의 벽은 온통 파란색으로 많이들 칠해 놓았다. 바다가 없는 이곳에서 바다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순간이다. 골목길들의 좁은 통로에서는 어디서든 쉽게 산 아래를 감상할 수 있고, 하늘을 가까이할 수 있다.

그렇게 한가로이 지내다가 페스로 이동해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나를 내려줬던 버스터미널까지 걸어서 갔다. 내리막길이라서 갈 만했다. 버스가 아침에 있다고 들어서 9시에 갔는데, 버스는 오후 1시에나 있단다. 좋은 버스가 있긴 하나 그건 만원이란다. 1시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린다.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쯤에는 더 많은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염소가 ‘음매’ 우는 소리, 작은 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 개가 ‘깽깽’ 내지르는 소리,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 그리고 더 멀리서 들려오는 소의 울음소리까지 바람이 전해준다.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 저자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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