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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소나무와 삼나무의 싸움, 거북선과 日안택선 재질이 승패갈라”

입력 : 2013-07-18 01:39:54 수정 : 2013-07-18 01: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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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 펴내 #장면 하나. 왜구가 한반도에서 부린 패악은 1350년대를 전후해 양상이 달라진다. 왜구의 규모가 배 100척 이상으로 확대되고, 침략 지역은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에 이르렀다. 고려의 수도 개경의 치안까지 위협할 정도였다. 조선 초에도 마찬가지여서 태조 5년(1396) 왜구는 120여 척의 선단으로 침입해 민가를 약탈했다.

#장면 둘. 1592년 6월 이순신은 현재의 경남 통영시 산양읍의 당포에 도착했다. 왜군 선단과 만난 이순신은 이때 처음 거북선을 출격시켰다. 왜선에 돌진하고, 장착된 대포를 마구 쏘아 대는 거북선의 활약은 눈부셨다.

두 장면의 공통점 중 하나가 ‘소나무’라고 하면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찬찬히 따져보자. 왜구의 침략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활약은 모두 한반도 안보에서 해군력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한다. 해군력의 핵심은 뭘까. 예나 지금이나 전함이다. 전근대 시기 전함을 건조하기 위한 주재료는? 소나무였다. 조선 정부는 왜구의 패악에 대응하기 위해 전함 건조에 주력했고, 여기에 쓰일 소나무의 확보를 고민했다. 거북선은 재질이 단단한 소나무로 만들어진 배라 돌격전이 가능했다.

풀어놓고 보면 당연해 보이는 논리지만 그간의 전쟁사 연구에서 소나무는 그리 주목받는 소재가 아니었다. 강판권(사진) 계명대 교수가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문학동네)에서 보여주는 시각이 독특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강 교수는 임진왜란을 ‘조선의 거북선과 일본의 안택선(安宅船) 간의 싸움’으로 규정한다. 이는 곧 ‘소나무와 삼나무의 싸움’이기도 했다. 거북선이 소나무로, 안택선이 삼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승패는 두 나무의 재질에서 갈렸다. 삼나무는 소나무에 비해 무르다. 따라서 삼나무로 만든 안택선은 거북선의 돌격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왜구들은 한반도 도서 지역을 노략질하면서 소나무를 구해가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대마도에 배를 만들 만한 재목이 없어 전라도에서 와서 배를 만들어 가지고 돌아간다”는 기록이 있다.

책은 전쟁사뿐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소나무의 활용 사례를 소개하면서 역사를 이야기한다. 조선 건국 초기 한양 건설과 궁궐의 신축·보수, 사찰의 건립과 목장의 조성 등에서 소나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흉년에는 구황식품이기도 했다. 쓰임새가 많다 보니 조선 정부는 소나무를 확보하고, 남벌을 막기 위해 제도를 정비했다. 불법적으로 소나무를 10그루 이상 벤 자는 온 집안을 변방으로 이주시켜 패가망신을 시키는 처벌 규정도 있었다. 또 소나무를 갉아먹는 송충이를 잡는 일에 임금까지 신경을 써야 했던 사정이 흥미롭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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