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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내부고발자를 울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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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7-02 21:13:40 수정 : 2014-03-05 16: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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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위해 불법·비리에 ‘휘슬’
용기 낸 사람들 철저 보호 절실
전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자국 정보기관의 무차별 도청과 해킹 사실을 폭로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38개국 주미 대사관과 유엔대표부도 감청 대상이었다니 충격적이다. 후폭풍이 거세다. 폭로는 정당하고 정의로웠지만 미 수사당국은 스노든을 ‘국가기밀을 유출한 반역자’로 규정했다. 국제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 사건으로 스노든은 미 역사상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또 한 명의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로 남게 됐다.

염호상 사회부장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내부고발자(공익신고자)가 나선 사례는 적지 않다. 1971년 미 국방부 소속 군사전문가 대니얼 엘스버그는 미국이 베트남전 발발에 개입한 과정이 담긴 ‘펜타곤 페이퍼’를 언론에 건네 반전여론에 불을 지폈다. 1974년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 뒤에는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의 제보가 있었다. 2001년 에너지회사 엔론의 회계부정을 고발한 셰론 왓킨스 전 엔론 부사장, 2010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민간인 살해 장면 동영상과 외교문서를 폭로한 브래들리 매닝 일병도 대표적인 내부고발자다.

우리나라는 1990년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불법사찰 기록 공개, 이문옥 감사관의 감사원과 재벌의 유착 비리 폭로를 계기로 내부고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후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고발한 이지문 중위, 경찰 수뇌부의 국정원 수사 축소·은폐 사실을 공개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등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이 이어졌다. 이들은 모두 철옹성 같은 권력기관 안에서 비밀스럽게 저질러지는 불법·비리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희생을 감내했다. 불의 앞에서 거침없이 호루라기를 울려 대는 내부고발자야말로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준법 감시자들이다.

내부고발은 부패를 근절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세계 50여개 나라가 내부고발자 보호법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도 탁월한 효용성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내부고발 제도가 이런저런 이유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기 희생 정신과 용기가 부족하다. 한국투명성기구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5∼30세 남녀 10명 가운데 4명은 부정부패를 목격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신고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이유도 다양하다. ‘신고하더라도 효과가 없어서’, ‘보호받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워서’, ‘나와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에’…. 부정부패는 무관심의 그늘에서 싹을 틔운다. 어려서부터 반부패와 청렴을 강조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2001년 부패방지법, 2011년 공익신고자보호법을 각각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법이 있다고 해서 신고자가 모두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각지대가 많기 때문이다. 부패방지법은 수사기관이나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속한 기관이나 그 기관을 지도감독하는 곳에 신고해야만 보호받도록 되어 있다. 공익신고자보호법도 별 차이가 없다. 신고할 수 있는 곳이 이처럼 한정되다 보니 고발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내부고발자 보호 책임기관인 국가권익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 부족도 문제다. 권익위는 부패사건에 대한 조사권은 없고 심사권만 갖는다. 이 때문에 고발자가 부패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완벽한 증거까지 제시해야 하는 이상한 구조가 되어 버렸다. 무분별한 신고를 막기 위해 익명의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공익신고를 하려면 반드시 증거를 함께 제출해야 하는 만큼 고발자가 익명의 그늘에 숨어 허위 신고를 남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02년 부패방지법 시행 이후 10년간 부패혐의 적발로 환수한 금액은 1885억원에 이르고, 이 가운데 1174억원(62.3%)이 내부고발에 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지만 고발된 비리혐의자에 대한 사법당국의 수사는 여전히 미흡하고, 내부고발자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불이익이 가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주에는 어린이집 내부비리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려진 보육교사들이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자 보호 조치를 요청하는 일까지 있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부정과 비리는 교묘해지고 더 음습한 곳을 파고든다. 내부고발자 도움 없이 범죄를 적발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고발은 장려하면서 고발자 보호에는 소극적인 이중적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진실을 알리기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이 눈물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

염호상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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