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운동해야 경기력 향상
손자뻘 젊은 선수와 적극 소통
그래도 땀이 성적내는건 진리
한국 엘리트 체육의 요람인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에도 레슬링, 탁구, 빙상 등 400여명의 선수 및 지도자가 ‘땀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모두 개인의 희생을 통해 국민에게 용기와 감동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에는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선수들의 함성이 그치질 않는다. 모든 운동선수들은 자랑스러운 국가대표가 되어 한 번이라도 선수촌에 들어와 훈련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긴다. 또 스포츠 지도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선망의 자리가 선수촌장이다. 1970년대 초 유도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렸고, 용인대에서 30년 넘게 후학들을 지도해 왔던 최종삼(65)씨가 최근 선수촌장에 취임했다. 17일 태릉선수촌 집무실로 찾아가 앞으로의 포부와 선수촌 운영계획 등을 들어봤다.

“각 종목 지도자들을 일일이 만나 현안을 거의 파악했다. 선수촌에서 선수들과 숙식을 함께하면서 빨리 적응한 것 같다. 어린 선수들이 집을 떠나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훈련하는데 어떻게 집에서 잠잘 수 있겠는가. 태백 분촌과 진천 선수촌도 가봤다. 하루에 두 곳을 방문하는 강행군이었지만 유익했다. 다행히 문체부 2차관으로 영전하신 박종길 전임 촌장께서 많은 노력을 하신 결과 훈련시스템과 기본여건이 잘 마련돼 있다. 정말 다행스럽다. 이곳에서 청춘을 바치는 선수들을 위해 지도자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과거 유도 선수와 지도자로서 선수촌에 몸담아 현장을 훤히 뚫고 있는 데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게 선수촌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될 텐데.
“시대가 변했지만 이곳 시설과 시스템은 하드웨어적으로는 사회의 환경보다는 늘 앞서 있다고 평가한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훈련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 나 또한 1970년 초반엔 선수로서, 1988서울올림픽과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앞두고는 지도자로서 이곳에서 땀을 흘렸다. 과거 선수시절 당시 김성집 촌장께서 훈련장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힘이 났다. 지금의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구나 대학에 오랫동안 몸담았기 때문에 젊은 선수들과 어울릴 줄도 알고, 그들이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잘 안다. 젊음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좋다.”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점은.
“선수촌에 들어올 정도의 국가대표 선수라면 누구나 기본 역량은 갖춰져 있다. 나머지는 지도자의 능력이다. 지도자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지도자들의 모습과 행동을 선수들이 닮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도자는 어린 선수들에게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나 자신 또한 지도자들과 선수들에게 늘 깨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하루 일과는.
“선수들과 숙식을 함께하면서 하루종일 훈련장에 붙어 지낸다.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6시에 대운동장에 모여 함께 체조를 시작한다. 종목별로 구보를 할 때엔 나는 도보로 크로스컨트리를 한다. 오전 10시에는 훈련장을 둘러보고 점심식사를 한 뒤 오후에도 훈련장을 돌아다닌다. 그래서 늘 운동화에 운동복 차림이다. 지도자들로부터 애로사항을 들으려고 저녁식사는 늘 그들과 함께한다. 밤 10시에 취침해야 하지만 할 일이 많아 잘 지키지 못하고 있다. 집이 서울 반포여서 밤늦게 갔다가 서두르면 새벽 훈련에 참여할 수 있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선수촌에서 먹고 잔다. 토요일 오후를 이용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 다녀온다.”
―전임 박종길 선수촌장 시절 밴쿠버동계올림픽과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부담은 없는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최우선이다. 그게 선수촌의 목표다. 밴쿠버동계올림픽과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현재 선수촌은 훈련여건과 분위기가 좋다. 촌장과 지도자들이 열심히 하면 선수들도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낼 것이다. 피겨의 김연아도,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 선수도 잘 해주고 있다. 앞으로 6개월 남은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좋다.”

“선수촌 하면 딱딱하고 상명하복식의 훈련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유도 총감독으로 있었던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까지도 분명 그러했다. 하지만 사회와 시대는 바뀌었다. 대학에서 젊은 학생들을 많이 가르쳐 봤기에 젊은 선수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시대적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스파르타식 훈련은 안 통한다. 강제적인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선수들 스스로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훈련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무엇보다 신세대 선수들에게 즐거운 훈련공간을 제공해야 경기력도 향상된다. 지도자들에게도 선수들과 늘 소통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나 또한 손자뻘 되는 선수들과 늘 소통할 자세가 돼 있다. 딱딱하지 않은 ‘부드러운 선수촌’을 만들어 가겠다.”
―40년 전 선수시절과 지금의 선수촌을 비교하면.
“과거 세 번이나 이곳에 입촌해 정열을 불태웠다. 훈련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 지금의 선수촌은 시대가 변한 만큼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졌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하는 요즘에 비해 당시에는 훈련량도 많았다. 피땀을 흘려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선수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예전같지 않다. 국민적인 관심과 성원이 대한민국을 스포츠 강국으로 만들었다. 늘 고맙게 여기는 부분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딱 하나 있다. 밤늦게까지 훈련하며 땀을 많이 흘릴수록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의 최측근으로 촌장에 임명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김 회장께서 결코 사사로운 개인적인 감정과 친분관계에 얽혀 선수촌장을 임명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감사히 여긴다. 체육계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그분은 선수촌장이 어떤 자리인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맡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40년 넘게 지켜봤기에 누구보다도 나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다. 자화자찬 같지만 일을 맡기면 물불 가리지 않고 해내는 게 나의 스타일이다. 주위에서 그런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한국스포츠 발전을 위해 그동안 입은 은혜를 되돌려주고 마지막 봉사하는 자세로 견마지로를 다하겠다.”
―개선할 과제가 있다면.
“무엇보다 전임 지도자들의 처우 개선이 절실하다.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몸담아온 전문가들인데도 처우가 현실적이지 못하다. 액수를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 없지만 턱없이 낮다. 메달 획득 가능성이 작은 종목은 더욱 그렇다.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행운아다. 전임 촌장께서는 문체부 제2차관으로 재직 중이고, 국가대표 출신이 처음 대한체육회장을 맡고 있어 이해와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국가대표 선수들이 은퇴한 이후 다른 분야에서 성공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고 했는데.
“국가대표 선수들은 현역으로 뛰는 동안에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러다가 은퇴하면 곤두박칠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승부근성이 강한 그들은 일에 대한 욕심도 남다르다. 단지 방법을 모를 뿐이다. 이곳 선수촌에서 일주일에 최소 한 과목이라도 공부할 수 있는 커리큘럼 시스템을 만들어보려고 관계기관과 협의 중에 있다. 낮에 훈련하고 밤에 수업하는 주경야독이 어떨까 한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선수를 양성하고 싶다.”
대담=박병헌 선임기자, 사진=남제현 기자
■ 최종삼 태릉선수촌장 약력
▲1948년 2월 전남 장성 출생 ▲1971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 63kg급 동메달 ▲유도 대표팀 감독(1986∼92년) ▲2005년 대한유도회 부회장 ▲2011년 동아시아유도연맹 회장
▲1948년 2월 전남 장성 출생 ▲1971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 63kg급 동메달 ▲유도 대표팀 감독(1986∼92년) ▲2005년 대한유도회 부회장 ▲2011년 동아시아유도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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