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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logue] 관객과 공유한 역사 … 긴장감 없어도 일상적 사랑 소중함 일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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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5-30 22:25:15 수정 : 2013-05-30 22: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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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미드나잇’
만일 전사(前史)가 없었더라면, 그러니까 역사가 없었다면 ‘비포 미드나잇’은 지긋지긋한 결혼 다큐멘터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 제시와 셀린에게는 전사가 있다. 그것도 수만 명의 관객과 공유한 역사 말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비포 선라이즈’ 이후 9년 내지 8년 간격으로 다음 편 영화를 만들어 왔다. 2004년 9년 만에 ‘비포 선셋’이 만들어졌고 아쉬움을 가득 간직한 채 헤어졌던 23살의 연인들은 32살이 되어 다시 만났다. 그리고 또 9년이 흘러 41살이 된 제시와 셀린이 우리 앞에 돌아왔다. 32살 때까지만 해도 성적 매력으로 충만했던 이들이 이젠 아이들의 연대기로 지난 10년을 회고하는 41살의 중년 부부가 되었다.

‘비포 선셋’에서 32살의 셀린과 ‘비포 미드나잇’의 41살 제시는 똑같은 대사를 한다. “우리가 이 나이가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생각해 보면 그렇다. 열아홉 살의 소년 소녀는 절대로 될 것 같지 않던 서른 살이 된다. 마흔 살도 마찬가지이다. 스무 살 이후의 나이는 낮은 포복으로 습격한다. 언젠가 그 나이가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세월은 상실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을 가득 메우고 있는 긴장감은 아직 확인하지 못한 두 남녀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우연과 필연 사이에서 헤매던 두 남녀는 서로 다른 남녀의 배우자가 된 10년 후에도 여전히 서로의 문을 두드리고 싶어했다. ‘비포 미드나잇’엔 이제 더 이상 그런 긴장감은 없다. 제시와 셀린은 이미 부부가 되고, 두 딸아이의 성장담으로 지난 10년을 회고한다.

연인들에게 섹스는 일회적 사건이지만 부부에게 그건 이미 생활의 일부이다. 연인에게 상대는 아직 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라면 부부에게 상대는 속 내용이 공개된 선물 상자와 같다. 연애가 미지의 호기심이 주로 작용하는 시소라면 결혼은 익숙함과 편안함 사이에서의 갈등인 셈이다. 연애가 사건이라면 결혼은 일상이자 역사이다.

‘비포 미드나잇’에 처음 등장한 두 사람의 애무가 당혹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셀린의 몸은 딸아이 둘을 출산한 몸답게 부풀어 있고 제시의 수염 역시 붉은색에서 갈색으로 바뀌어 있다. 진짜 당혹감은 바뀐 몸이 아니라 서로의 몸을 대하는 태도에서 빚어진다. 셀린은 옷을 반쯤 벗어 유방을 노출한 채 남편과의 언쟁에 몰두한다.

말싸움을 하며 문을 연 채 소변을 보는 제시의 모습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왜냐면 이런 장면은 사실 많은 부부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결혼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포 미드나잇’이 보여주는 것은 환멸이 아니라 일상적 사랑의 소중함이다. 70여 년을 함께하는 숙면과도 같은 사랑, 그게 바로 부부의 사랑이라고 말이다. 고작 32살 때 지나온 세월을 푸념했듯이 어쩌면 제시와 셀린은 지금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10년 후, 그들은 41살의 그들을 그리워할 테니 말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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