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맘 먹고 아내 옷 한 벌 사주러 백화점에 들렀다가, 또는 남편 양복을 사러 갔다가 옷에 붙은 가격표시(tag)를 보고 아연실색한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아니 웬 옷값이 이렇게 비싸! 그깟 천 조각이 얼마나 한다고.”
우리나라 옷값은 정말 비싸다. 백화점에서 파는 유명 브랜드의 정장 한 벌 가격은 보통 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희소가치 비용을 포함하는 명품 브랜드도 아닌 국산 기성복 제품이 그렇다. 도대체 정장 한 벌 가격이 왜 이렇게 비쌀까. 원가 분석을 해보면 원단과 부자재 등 제품에 들어가는 제조가는 전체 30% 정도다.
그보다 많은 36~37%가 백화점 수수료로 들어간다. 100만 원짜리 옷을 실제 만들기 위한 비용은 30만 원이고, 백화점에 입점한 대가로 내는 돈이 36~37만 원이다. 화려한 조명과 깨끗한 쇼핑 공간이 주는 만족감에 치르는 비용이 옷 제작비보다 비싼 꼴이다. 여기에 제조업체들이 자체 고용한 백화점 매장 직원 숍마스터 몫으로 12% 정도가 더해진다. 기타 비용으로 백화점에서 치르는 각종 광고·홍보 프로모션과 고객 초청행사 등 비용이 약 4∼5% 추가된다고 업체들은 설명한다. 결국 소비자들은 100만 원짜리 여성복을 사면 40만 원 정도를 백화점 몫으로 고스란히 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몇 년 전 “세계에서 리바이스 청바지가 가장 비싼 나라는 한국”이라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당시 매스컴과 국민들은 “왜 우리나라만 옷값이 그렇게 비싸냐”고 의류업체들을 탓했다. 하지만 의류업계는 “한국의 유통구조를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발끈했다.
국내 백화점이 의류에 높은 수수료를 매기는 것은 일본 백화점 운영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 백화점들은 바이어들이 제조업체에서 물건을 사서 직접 판매한다. 의류업체들은 주문한 양만 만들어 팔기 때문에 재고 부담이 전혀 없다. 또 수수료가 없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옷값이 책정되지 않는다.
A 여성복업체 관계자는 “우리도 미국이나 유럽 백화점처럼 사입식 의류 제도가 하루빨리 도입·정착돼야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지금처럼 국내 업체들한테는 40% 가까이 떼어 가고, 수입 브랜드에서는 10% 안팎만 수수료로 받는 불평등 속에서 정당한 경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턱없이 높은 백화점 수수료는 입점업체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폭탄’이 아닐 수 없다. 백화점이 ‘가격 거품’을 빼고 제품의 질로 승부하는 공간이 되려면 수수료 문턱을 시급히 낮추어야 한다.
김기환 기자 k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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