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권 침해… 법적 근거없어” 반발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성매매 근절 방안으로 추진했던 유도(함정)수사에 대한 법 제정 대신 수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유도수사가 무고한 범죄자를 양산한다는 비난이 일자 법제화 방침에서 물러나 수사 기법을 정리해 경찰에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 주체인 경찰과는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예상된다.
21일 여성부와 경찰청 등에 따르면 여성부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채팅을 통해 이뤄지는 청소년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유도수사기법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경찰에 통보하기로 했다.
여성부는 지난 3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유도수사 방식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다가 무고한 범죄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비난이 일자 입장을 바꾼 셈이다.

가이드라인에는 경찰관이 직접 인터넷상에 가상의 여성·청소년을 만든 뒤 사이트 등에서 활동하다 채팅을 시도하는 누리꾼의 증거자료를 수집해 검거하는 방식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경찰 측은 수사권 침해라며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수사기관이 아닌 곳에서 수사기법을 마련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데다 유도수사에 대한 법적 근거없이 함정수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여성부는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경찰과 협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의 인물을 범행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을 놓고도 적법성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경찰이 범인 또는 범행을 유도한 ‘범의유발형’ 수사 기법을 위법으로 보고 있다. 2009년 1월 서울중앙지법은 경찰이 면허정지된 박모(42)씨에게 ‘차량 이동 바랍니다. 구청공사’라는 문자를 보내 적발한 사건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앞서 대법원도 2007년 10월 경찰의 유인으로 히로뽕 0.24g을 20만원에 구입해 투약한 김모(33)씨에 대해 기소 자체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다만 경찰이 성매매 전단을 배포한 자에게 전화를 건 뒤 검거하는 유형인 ‘기회제공형’ 함정수사 기법은 인정해왔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범죄자를 양산할 수 있어 현재까지는 범행의 여지가 있는 특정사건에 대해서만 함정수사를 해왔는데, 이번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놓고 논란이 거세 이마저도 못할까 우려된다”며 “수사기법은 수사기관이 주최가 돼 만들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여성부의 한 관계자는 “단계적인 절차 등을 고려한 방침”이라며 “다양한 시각과 여론을 수렴한 뒤 경찰과 함께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탁 기자 oyt@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